기본권에 관한 다섯 가지 범주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자신의 담론 원리(D)를 민주주의 원리(DP)로 제도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 "권리의 논리적 기원"이라 명명한 것을 이론적으로 정초하였는데요. 즉, 이미 법적으로 형식화된 자유(권리)에 대한 보편적 기대를 전제한 상태에서, 담론 원리를 그 위에 적용함으로써, 하버마스는 정치적 자율성이 실현되는 조건들을 제도적으로 구체화한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화는 곧 민주주의 원리로 나타나며, 이는 권리 체계 안에서 정치적 의사소통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핵심 구성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64).
I.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상호 근원성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권리 체계가 인권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나 국민주권의 윤리적 해석에 환원될 수 없다는 하버마스의 주장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담론 원리 (D)가 법적 제도화를 통해 민주주의 원리(DP)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법적 의사소통의 매체로서 작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범적 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 권리의 담지자들로서, 자발적 결사체의 구성원인 법적 인격체의 지위는 이 틀에 선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격체의 사적자율성을 보호하는 고전적 자유권이 없다면, 시민들이 자신들의 시민적 자율성을 시행할 수 있는 조건들을 법적으로 제도화 하기 위한어떤 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하버마스에게, 우리가 실정법을 통해 우리의 집합적 삶을 정당하게 규제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율성을 실현할 수 있는 매체를 임의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법적 주체로써, 우리는 단지 법의 산출에 참여하고, 여기서 차용되는 언어 역시 우리의 영향력 밖에 있지 않는 것이지요.
이 맥락에서, 하버마스는 인권과 국민주권의 내적 연관이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는법 코드를 통한 자기 입법의 법적 제도화에 의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는 이러한 자유들의 공정하고 동등한 분배가 오직 민주적절차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 절차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정치적 의견 형성과 의지형성의 결과가 합리적이라고 추측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의 권리 체계 속에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을 상호 근원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하버마스의 전략이고, 이를 통해 그는 합법성의 정당성이 해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전략을 고려하여, 우리가 실증법을 통해 우리의 삶을 함께 규제해야 한다면 서로에게 부여해야 하는 권리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하버마스의 응답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추가적으로 (i)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 그리고 (ii) 시민사회와 정치적 공론장에 관한 그의 nuanced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회차들을 통해 이들을 순차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자신의 전략과 관련하여 하버마스가 제시한 다섯 가지 기본권의 범주를 소개하겠습니다.
II. 기본권의 다섯 가지 범주
하버마스는 법적 주체로서 우리가 실증법을 통해 우리의 집합적 삶을 조정하기 위해 서로에게 부여해야 할 다섯 가지 기본권 범주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1) 가능한 최대의 평등한 주관적 행위자유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본권
(2) 법적 동료들의 자유의지적 연합체 속에서 그 구성원의 지위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본권
(3) 권리의 소송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개인적 권리보호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직접 생겨나는 기본권
(4) 시민들의 정치적 자율성이 행사되고 정당한 법이 산출되는 의견형성과 의지형성 과정에 시민들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본권
(5) 생활조건 보장에 대한 기본권: (1)에서 (4)까지 나열된 시민적 권리를 균등한 기회를 갖고서 사용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한에서 사회적, 기술적, 생태학적으로 보장된다.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2-123.
하버마스 서술에서, 처음 세 개의 범주들은 담론 원리 (D)가 법 매체에 적용될 때 작동하고, 따라서 개개인이나 심의 참가자들의 법적 지위를 구체화합니다.
이 범주들은 법의 수신자로써 시민들의 사적 자율성을 보호하는 개인적 자유와 관련된 권리를 지칭하고, 이러한 시민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기능적인 법적 체계를 형성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1)은 법 형식을 구성하는 자유에 대한 일반적 권리와 담론 원리 (D)에서 도출된 가능한 최대의 동등한 개인적 자유에 대한 권리를 결합함으로써 발생합니다.
(2)는 누가 (1)에 명시된 권리에 대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구체화 합니다. 법규범은 단지 동일한 역사적 시간과 사회적 맥락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고, 국적법을 통해 특정한 시민들의 결사체의 범주를 명확히 합니다. 여기서 담론 원리 (D)는 구성원 자격을 포기하거나 다른 법적 공동체로 이주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소속원들의 동의와 관련됩니다.
(3)은 (1)과 (2)에 기술된 권리들이 위반되었을 때, 법적 주체들이 (법적)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구제의 보장을 의미합니다. 담론 원리 (D)는 동등한 법적 보호, 법적 절차의 동등한 접근, 그리고 법 적용에 있어 공정함과 같은 소송 절차 속 기본권을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1)에서 (3)까지의 이러한 권리들이 법 코드 자체를 확립하고, 이 권리들 없이는 어떤 정당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권리들은 법적 주체로써 시민에 관한 개념을 구체화 함으로써, 법 체계를 위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버마스는 권리의 이 세 가지 범주들을 민주주의 그 자체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그가 보기에, 이들은 특정한 기본권의 구체화를 위해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리 지킴이로써 기능을 하는데요.
즉, 이들은 (4)와 (5)의 정치적 자율성이 가능해지기 위한 사적 자율성의 제도적 조건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권리의 이 처음 세 가지 범주들과 이후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일까요? 이와 관련한 하버마스의 서술은 무엇일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