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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9. 우리는 왜 법의 저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버마스의 기본권 해석과 민주주의의 정당성 구조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상호 근원성을 실정법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써, 하버마스가 제시했던 다섯 가지 기본권의 범주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기본권들은 시민들이 서로를 법적 동료로 인정하고, 민주적 공동체 안에서 상호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들입니다.


(1) 가능한 최대의 평등한 주관적 행위자유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본권

(2) 법적 동료들의 자유의지적 연합체 속에서 그 구성원의 지위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본권

(3) 권리의 소송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개인적 권리보호에 대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형으로부터 직접 생겨나는 기본권

(4) 시민들의 정치적 자율성이 행사되고 정당한 법이 산출되는 의견형성과 의지형성 과정에 시민들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본권

(5) 생활조건 보장에 대한 기본권: (1)에서 (4)까지 나열된 시민적 권리를 균등한 기회를 갖고서 사용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한에서 사회적, 기술적, 생태학적으로 보장된다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2-123).

(참조: https://brunch.co.kr/@2h4jus/67)


이들 중 하버마스는 처음 세 가지 범주들을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 역시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이 세 개의 기본권은 특정한 기본권의 구체화를 위한, 즉 (4)와 (5)의 정치적 자율성이 가능해지기 위한 사적 자율성의 제도적 조건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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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네 번째 기본권의 역할

하버마스는 처음 세 가지 기본권의 범주들이 헌법 제정자를 인도하는 법적 원리들로써 역할을 하고, 합리성을 제공하는 법 형식의 본성이 이 원리들 속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부분적으로 추상적인 상태로 남아있는 법코드에 새겨진 기본권은 “반드시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정치적 입법부에 의해 해석되고 조형되어야" ("must be interpreted and given concrete shape by a political legislature in response to changing circumstances,"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5)" 합니다.

(4)에서, 하버마스는 이러한 권리들을 해석하고 조형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치적 참여권을 기술합니다.

(4)는 법적 주체들이 스스로를 법의 저자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이들의 정치적 참여권을 통해 공적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공적 자율성을 시행함으로써, 법적 주체들은, 법의 저자의 관점에서, 법의 수신인으로서 자신들의 사적 자율성을 보호하고 구체화합니다.

하버마스에게, 자기 입법의 개념은 법의 매개체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에, (i) 시민들은 자신들의 제정한 법의 적법성을 담론 원리(D)를 통해 평가해야 하고; (ii) 이 평가를 위한 조건들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입법자들이 의지형성 및 의견형성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이 목적에 필수적인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입니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는 (1)-(3) 위에서 기술되게 되는 것입니다.

(상기 내용은 Ibid., 126-127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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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다섯 번째 기본권의 역할

다른 한편으로, 앞선 논증의 선상에서, 정치적 참여를 향한 기본권이, 처음 세 가지 권리 범주들과 달리, 법 코드 자체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버마스도 이미 정치적 참여권 없이도 법이 제정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소극적 자유와 사회적 권리는 온정주의적 방식에서 부여될 수 있고; 따라서, 원칙적으로, 입헌 국가와 복지 국가는 민주주의 없이도 형식적으로 구성될 수 있지만, 이러한 체계는 자기 입법의 정당성을 결여하며, 따라서 시민적 자율성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버마스에게, 정치적 참여권만이 “시민들의 성찰적이고 자기 참조적인 법적 위상에 근거를 제공" ("ground the citizen’s reflexive, self-referential legal standing," Ibid., 78)"합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이 권리들이 없다면, 온정주의적으로 부여된 어떤 법이든 그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들은 국민주권의 이상을 구체화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상호 근원성을 성취하기 위해, 따라서, 합법성의 정당성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시민들은 스스로 심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헌법 제정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이들은 민주주의 원리(DP)로써 담론 원리(D)에게 그 법적 형식을 제공하는 권리를 구조화하는 방식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마스의 직접적 진술을 살펴봅시다.



"따라서 바람직한 정치적 권리는 입법과 관련된 모든 토론 과정과 결정과정에 대한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또 그 모든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비판 가능한 타당성 주장에 대하여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자유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의사소통적 자유를 정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의 법제화에 상응하는 것이 그 속에서 담론 원리가 적용되는 정치적 의견형성과 의지형성의 제도이다."

> "Hence the desired political rights must guarantee participation in all deliberative and decisional processes relevant to legislation and must do so in a way that provides each person with equal chances to exercise the communicative freedom to take a position on criticizable validity claims. Equal opportunities for the political use of communicative freedom require a legally structured deliberative praxis in which the discourse principle is applied." Ibid., 127.



하버마스는 (5)의 사회적, 그리고 생태학적 권리들을 시민들이 (1)에서 (4)까지 기술된 기본권을 시행하는 데 있어 동등한 기회 보장에 필수적인 물질적 전제 조건들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그는 (5)의 권리들을, (1)에서 (4)까지의 시민권적 권리들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파생된 권리로 이해하면서, 자체적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 즉 상대적 방식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하버마스가 입헌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들로써 “절대적으로 정당화되는 시민권" ("absolutely justified categories of civil rights," Ibid., 123)으로 묘사한 (1)에서 (4)까지 권리들과 대비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즉, 하버마스는 논증적 (혹은 정치적) 참여의 기회에 있어 불균형을 포함한 민주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다루기 위한 교정적 조치로써 (5)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전 chapter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버마스는 민주주의 원리(DP)를 통해, 입법과 그 적용이 합리적 결과를 양산할 수 있는 방식을 입증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정치적 입법 기관이 통과시킨 규범들과 사법 시스템이 인정한 권리는 (법적 주체로서) 수신인들이 자유롭고 동등한 자발적 연합체의 구성원으로 간주되는 방식을 묘사함으로써 자신들의 합리성을 증명합니다.

이는 법적 주체들의 법적 자격이 논증적 입법 과정에 늘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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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다섯 번째 권리,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

그러나, 하버마스는 최근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부의 공정한 분배, 혹은 사회적으로 양산된 위험으로부터 좀 더 효과적인 보호와 관련된) 사회적, 그리고 생태학적 권리를 다루는 방식이, 특히 법의 실질화(materialisation)의 관점에서, (1)에서 (4) 속의 권리들 주변의 논의와 크게 분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보기에, (5)의 권리들은, 국가 활동에 의존하면서, 종종 복지 국가 모델로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요.

하버마스는 이러한 경향성이 “정당한 권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의미" ("freedom-guaranteeing meaning of legitimate rights," Ibid., 418)를 간과하고, 법의 복지 패러다임을 사회적으로 양산된 삶의 기회의 정당한 분배를 다루는 쪽으로 향하게 한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하버마스에게, 권리의 동등한 분배는 – 이들이 개인적 권리이든 사회적 권리이든 간에 – “서로를 자유롭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상호성" (the “mutuality of recognising all as free and equal members,” Ibid.)에서 옵니다.

이 동등한 분배는 “공민권을 가진 시민들이 입법의 실천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으로 시행할 수 있는" ("enfranchised citizens can exercise only in common, by taking part in the practice of legislation," Ibid., 419) 사적 자율성이라는 사고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연재의 말미에서 권리의 동등한 분배에 관한 그의 시각을 지렛대 삼아, 그의 심의 민주주의 이론과 얽혀 있는 하버마스의 정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Kevin Olson이 “Deliberative Democracy” in Jürgen Habermas: Key Concepts, Edited by Barbara Fultner, 2014에서 잘 요약한 것처럼, 권리 체계에 관한 자신의 담론-이론적 이해에서 도출된 기본권에 관한 하버마스의 다섯 가지 범주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세 개의 범주들은 민주적 법률의 전반적인 구조를 윤곽화 하는 반면, 마지막 두 개의 범주들은 시민들이 이러한 법률들을 스스로 형식화 하는데 필수적인 전제 조건들을 식별합니다.

하버마스는 이렇게 재구성된 권리 체계와 함께 두 가지 함의를 분명히 하는데요.

이들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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