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법적 제도화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자신의 초기 담론 원리(D)를 기반으로, 도덕 원리로써 보편화 원리(U)와 민주주의 원리(DP)를 도출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원리들을 각기 다른 차원에 둠으로써, 하버마스는 이들이 다루는 범주를 분명히 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참조: https://brunch.co.kr/@2h4jus/63)
이 원리들은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이 본질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면서, 권리의 법적 체계 속에서 내적으로 얽히도록 하고자 하는 하버마스의 시도 속에서 주요한 장치로써 역할을 합니다.
이전 장 말미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버마스는 법의 합법성에서 그 정당성이 발생하는 법규 내 법적 타당성의 본성을 스스로 “권리의 논리적 기원”이라 명명한 것 속에서 해명하는데요.
그는 이 기원을 담론 원리(D)와 법 형식의 상호 침투, 즉 서로 스며드는 구조로 여기는데, 이는 권리 체계를 두 단계로 구성하는 하버마스의 시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단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하버마스의 추가적인 해설을 순차적으로 살펴봅시다.
I. 법 매체(legal medium)와 사적 자율성
첫 번째 단계로써, 하버마스는, 여러 이론가들처럼, 법 매체 자체가 본질적으로 개인적 권리의 전달자로써 법적 주체의 지위를 정의하는 권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칸트의 법의 보편화 원리, 또는 롤스의 정의 제1 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법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는 사적 자율성과 관련하여 이러한 권리들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요.
이 맥락에서, 실정법(positive law)은 소극적 자유의 모델로써 사적 자율성을 향한 이러한 권리들을 타인의 동일한 자유와 양립 가능한 개인적 자유 혹은 선택의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로 성문화 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은 이러한 권리들을 보장하면서, 개개인을 공유된 배경의 의무적 제약에서 면제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 경우, 법의 정당성은, 법의 원리에 관한 칸트 형식 속에 그 기원과 함께, 단지 보편 법칙에서만 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성의 법정 속에서 법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단순히 “보편화 테스트(the universalisation test,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0)”를 통해 자유의 동등한 분배를 위한 법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는 법이 도덕에 종속된다는 점을 함축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법 매체자체에서 실현되는 자율성의 다른 측면을 반영하는데 실패한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II. 법, 그리고 의사소통적 자유
두 번째 단계에서, 하버마스는 권리 체계가 또한 법적 형식이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입법 실천의 참여(participation in the practice of politically autonomous law-making, Ibid., 121)”를 통한 국민주권의 실현인 시민들의 공적 자율성의 시행을 반영할 때 나타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지점에서, 법이 제공하는 개인적 자유와 구분되는 '의사소통적 자유(communicative freedom)'가 시야에 포착되고, 이 자유는 의무와 결합되게 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는, 클라우스 권터(Klaus Gunther)와 함께, 의사소통적 자유를 상호 이해지향적 행위 속에서 상호 간에 전제되어 있는 가능성, 즉 상대방의 발화와 그 발화 속에서 함께 제기되고 상호주관적 인정에 의존하는 타당성 주장에 대하여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해합니다.
그에 따르면, 의사소통적 자유는 수행적 태도를 채택하면서 타인과 상호 간 이해를 성취하고자 하고, 서로가 상호 호혜적으로 제기된 타당성 주장들을 다루는데 관여할 것을 예상하는 행위자들 사이에서만 제시됩니다.
따라서, 의사소통적 행위의 참여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행위 기획을 자발적으로 합의에 따라 조정하고자 하고,
반대로 이 합의는 타당성 주장을 표명하고 상호주관적으로 이를 승인하는 참여자들의 상호호혜적 입장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모든 참여자들이 받아들이기로 한 근거들 만이 여기서 그 중요성을 갖게 됩니다.
이와 동일한 유형의 근거들은 각각의 사례에서 “의사소통적 행위에 관여한 이들을 위한 합리적 동기화의 힘”을 갖습니다.
이 맥락을 따라, 하버마스의 형식 속에서,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입법은 이 의사소통적 자유에 기반합니다.
즉, 공적 자율성은 담론 원리(D)와 분리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그 강제적 힘을 포함하여 법은 오직 의사소통적 자유에 뿌리를 둔 합리적 동기화의 힘을 품고 있을 때 만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버마스에게, 정당한 법은 오직 법을 준수하기 위한 합리적 동기를 손상시키지 않는 법적 시행 양식과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시민의 자기 입법에 관한 이상은 “개별 인격체의 도덕적 자기 입법(moral self-legislation of individual persons, Ibid.)”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 보다 의사소통적 자유 속 합리적 동기화의 힘을 따라 우리에게 법의 수신인이자 저자라는 지위를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담론 윤리의 법적 제도화
이처럼, 하버마스가 보기에, 법의 정당성이 담론 윤리(D)와 분리될 수 없는 한, 담론적으로 정당화된 협상 절차를 통한 다양한 합리적 담론의 매개를 촉진하기 위해 담론 윤리의 법적 제도화는 필수적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시민들은 자신이 제정한 법이 정당한지 여부를 담론 원리를 통해 판정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을 제정하는 활동에는 이 담론 원리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담론을 통하여 합리적인 정치적 의지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는 의사소통의 형식들 자체가 법적으로 제도화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법적 형태를 가정할 때, 담론 원리는 민주주의 원리로 변화된다."
> "A constitution-making practice requires more than just a discourse principle by which citizens can judge whether the law they enact is legitimate. Rather, the very forms of communication that are supposed to make it possible to form a rational political will through discourse need to be legally institutionalised themselves. In assuming a legal shape, the discourse principle is transformed into a principle of democracy (Ibid., 454-455)."
이 제도화를 통해 담론 원리(D)가 민주주의 원리(DP)라는 법적 형태를 갖추는 동안, 입법 과정은 자신의 정당한 힘을 민주주의 원리로부터 끌어내게 됩니다.
하버마스에게, 민주주의 원리는 담론 원리와 법 형식의 상호 침투에서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 침투를 반영하는 권리의 논리적 기원으로 의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권리의 논리적 기원을 일종의 순환 과정으로 묘사합니다.
그의 논증에 따르면, 이는 이미 법적으로 형식화된 자유를 향한 보편적 권리에 담론 원리의 적용과 함께 시작해서, 정치적 자율성의 담론적 시행을 위한 전제 조건들의 법적 제도화로 끝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과정은 처음에 추상적이었던 사적 자율성 개념을 정치적 자율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법적으로 정제된 형태로의 변화를 이끌게 됩니다.
이 과정은 또한 법 코드 (혹은 법적 형태)와 정당한 법을 산출하는 메커니즘 (혹은 민주주의 원리)가 상호 근원적으로 구성되는 방식을 묘사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버마스에게, 민주주의 원리는 권리 체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 중 하나이고, 이는 민주주의가 사적 자율성으로써 개인적 권리에 종속되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함축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권리 체계가 인권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나 국민주권의 윤리적 해석에 환원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 일련의 과정들과 함께, 하버마스의 이 주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법의 권리 체계 속에서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을 상호 근원적으로 구성하면서, 합법성(legality)의 정당성(legitimacy)을 해명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