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i generis May 24. 2022

나에게 다독은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 의심


어린 시절부터 나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라는 일종의 절대적인 규율 같은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어머님이든, 학교 선생님이든, 혹은 남의 인생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든 간에,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언제나 훌륭한 사람에 비견되곤 했다.

비슷하게, 아마도 많은 분들께서 '책 많이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경험하셨을 것이고, 이는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일 것이다.

그리고 이 규범적 원리는 아마도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의 어린 시절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십여 년 전에 나는 수년 동안 집착처럼 가능한 내가 할 수 있는 시간 모두를 할애하여 책 읽기에 몰두한 적이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잘 알려진 소설이나 시집, 고전에서부터 과학, 인문, 사회, 역사, 철학까지 닥치는 대로 읽고, 수집했더랬다.

지금도 한국의 내 책장에는 장르 불문의 사고적 통일성이나 흐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책들로 채워져 있다.

수년 전 한국에 갔었을 때, 다시는 들춰낼 거 같지 않은 책 수십 권을 내다 버린 적이 있지만 여전히 그 장소에는 그렇게 내 지난 불미스러운 역사가 놓여 있다.

한국의 내 책장에 있는 책들로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책을 읽었던 장소도 다양했다.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 여행 중 기차나 비행기, 그리고 화장실에서도 나는 텍스트를 읽어댔다.

소개팅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하게 돼서 책을 읽은 적도 있고, 강의 전에도 내가 전달해야 할 내용은 제쳐두고 새로운 글을 읽은 적도 있다.





그렇게 잡히는 것 무엇이든 읽고, 가능한 다 끌어모아 책을 수집해대던 시절은 두 가지 경험으로 끝나게 되는데,

하나는 내가 본격적으로 철학 서적 읽기에 대부분의 독서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한 이후이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 읽었던 내용이 (당시에는 분명 다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잘... 혹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허탈감의 반복이었다.


몇 번을 반복해 읽어도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되는 철학 서적들과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지금은 철학 전공자임에도 이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특히 독일 관념론자들... 뭐 이미 그들은 그런 쪽으로 악명 높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다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읽은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했던 경험은 나를 향한 물음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런 자문들은 다음과 같은 결말로 향했다.

읽은 내용을 요약해서 재구성하지 못한다면,

1. 읽지 않은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2. 필자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서 비판적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3. 시간적, 경제적 낭비.


그러면 나는 왜 그렇게 다독에 집착했을까?

여전히 여기에 어떤 적절한 해답도 발견해 내지 못한 것을 보면,

적어도 나에겐 다독은 일종의 허영심이었던 것 같다.

그저 "나도 그 책 읽어봤음"과 함께 타인에게 그런 지적인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상인 척 해댔던, 아니 나를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라는 영역에 끼워 넣고 싶었던 그런 허영심 말이다 (그래서 푸코는 항상 나에게 망령처럼 남아있다).





그게 아니라면 시간을 두고서라도 다른 답이 떠올라야 하는데 아직까지 답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면, '허영심 맞네’ 하는 확신만 커져간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앞으로 누군가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라는 말은 할 일이 없을... 아마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독 그게 뭐라고...

그리고 책 속의 인상적인 문구를 사진으로 찍어 카톡 프로필에나 올려두던 일도 앞으로 없을 것이다.

지적인 척이 뭐라고...


지금은 그런 허영심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이다.

이제 잘 알려진 책 읽어보지 않았다고 괜한 열패감에 시달리지도 않고, 뭔가 있어보이는 책 읽어봤다고 우쭐대지도 않는다.

나에겐 필자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의/그녀의 의도대로 내용을 재구성 해보는 것이 다독보다 더 생산적이다.


물론 다독이 나에게 남긴 유산도 있다.

그런 유사한 허영심에서 또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닌지 잘 살피게 된다는 점?

'그나마 그만큼이라도 읽어서 네가 지금 이 정도라도 된 거 아니냐?' 라는 인과성 없는 위로?

그리고,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마치 규율 같은 모든 규범적 원리들에 대해 의심할 수 있게 해준 것?


# 최근에 또 의심하기 시작한 순수하게 규범적인 원리 하나는 '                                                  .'


# 일기면서 일기 아니라고 우기는 [일기 아닌 척]을 읽고 계실 감사한 여러분들... 부디 오해 마시길... 저에겐 다독이 그랬습니다. 여러분의 다독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학하길 잘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