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밟힌다고 꼭 죽으란 법은 없다.

만일+

by twohfiveownn

"때로는 무심할 정도로 하늘과 내 주변 모든 것들이 나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는 한다."


나에게는 4년 전 여자친구와 같이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다.

이름은 "찰리" 수컷 귀여운 말티즈.

너무 작고 연약해 안고 있으면, 내 몸이 조심스럽고 떨려 조금만 힘을 줘도 행여 부서지진 않을까

걱정할 만큼 나보다 더 사랑했던 내 소중한 가족.


찰리는 건강했다. 일 마치고 피곤함과 함께 돌아와 간단한 안주와 술 한잔을 할 때,

'왕'과 '멍'에 중간쯤 걸치는 육성을 내면서 내 옆에 와 자연스럽게 자기 배를 뒤집어 까고는 했다.

하얀색 보드랍게 자란 관리 잘 된 곱슬 털. 거기에 내 덜 깎은 수염을 가져다 대면서,

그 녀석 작은 연분홍색 배에 비빌 때면, 따갑다 발버둥 치는 것이

꼭 차이 많이 나는 동생을 형이 짓궂게 괴롭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좋았다.

모든 가족이 그렇듯 우리는 각자 아플 때 위로가 되어줬으며, 동시에 살아갈 힘이 되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오늘 죽어버렸다. 내 눈앞에서 너무나 갑자기. 간단하게.'


원인은 나였다. 어제 있었던 일로 모든 걸 미뤄두고 탓하며

궁상맞게 잠들었던 내가, 제대로 치우지 못한 쓰레기 같은 음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터무니없이 값비싸게 치러졌다.


"케엑, 컥컥..."


그것은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뼈를 삼킨 찰리는 작은 몸을 활처럼 휘어가며 세상의 모든 고통을 표현했다.

사지가, 온몸이 허우적거렸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어떠한 조치 이전에 몸부림치는 그 모습에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녀석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내 목구멍을 티슈로 틀어막아버린 것처럼 나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문득 몸을 움직여 뭐라도 해야 했던 나는 크게 발버둥 치는 잡아 녀석의 등을 쓸어주려고,

그리고 입을 벌려 이물질을 찾아보려 했지만,

순간, 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침상 밑에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엄청난 속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잡을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침상을 뒤엎으려 했다. 하지만 극도의 긴장감에 다리가 풀려버린 나는 엄한 곳에 힘을 주고 말았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나와 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저 빠르고 조용하게 모든 것을 헤집어 놓았을 뿐이다. 마치 나의 책임을 통감하라는 듯이.

나는 침상 옆으로 쓰러져 찰리를 살펴봤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들썩였고 보고 있는 사람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보란 듯이 참고 있는 듯 보였다. 녀석은 점점 몸부림이 줄더니, 눈 한번 깜빡일 시간만큼 지났을 때 완전히 찰리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그리고 나도. 적어도 둘만큼 그 좁은 방에서 침상 밑 우주를 들여다보니

그 순간 우리 둘 간격, 그 틈사이에는 모든 게 정지해버린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10센티만 더 바깥으로 움직이면 오토바이 소리도, 새의 지저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여전히 들렸겠지만

몹시 큰 충격으로 갑자기 흐르는 내 이명 때문인지, 들리지 않았고 그래도 상관없었다.

대신, 내 눈에 담기는 풍경은 더욱 선명하고 진하게 담아지고 있었다. 눈알을 파버리고 싶었다.

내가 좋아했던 윤슬을 띠던 하얀 곱슬도 발버둥에 눌려 숨이 영원히 죽어버렸다.

어제의 무책임한 내가 휘둘렀던 '죄'의 칼날은 나를 '반토막' 내버렸다.


찰리

-

결국 그날은 회사에 가지 못했다. 아니, 갈 수 없었다.

침상을 들어 젖혀서 벌벌 떠는 두 손으로 축 처져 식어버린 찰리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안광이 꺼진 찰리는 속상하게도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기가 느꼈을 고통과 반비례하게 너무나 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치, 날 위로라도 하려는 듯이.


살면서 처음 보는 죽음은 날 비웃듯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것을 앗아가버렸다.

고향에 계신 부모도 아픈 적은 있었지만 돌아가시진 않았다.

이 저항 없는 고통을 남기고 간 찰리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아파서 헛 구역질이 나왔다.


"차라리 비명이라도 나오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찰리 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날 두고 거둬지는게 걱정되고 못해준 나에게 화가나서. 너는 웅크리고, 몸이 식어가는 중에 일부로 평온한 척을 한거야? 너를 평생 그리워하고 스스로 죄의식에 가두라고 날 묶어놓은건가.. 나 잘 모르겠어..

다시.. 기회를 한번만 줬으면 좋겠어... "


감당할 수 없는 아픔에는 소리조차 낼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입을 크게 벌린 채 소리 삼키며 울었던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찰리를 끌어안으며 몸부림쳤고 그렇게 지쳐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알람이 들렸다. 가늠도 안 되는 정신에 우선 핸드폰을 여니 말도 안 되는 양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회사를 거꾸로 말하면? '사회'다. 그리고 사회는 나 따위 없어도 너무 잘 지내고 굴러간다. 나는 이제 직장도 잃었다. 평소라면 연차나 병가로 해서 어떻게 무마 됐겠지만. 연락도 없었고 공교롭게도 가장 바쁜 시기에 무단으로 결근을 해버린 나는 가볍게 내쳐졌다.

실패한 연애편지처럼 찢긴 마음은 얌전히 쓰레기통으로 향해졌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이 어스름해졌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현 상황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거라곤 부채가 가득한 빚과 얼마 없는 통장.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찰리밖에 없었다. 나는 찰리를 묻어주고 거리를 나왔다.

거기에 단 5분이라도 있다간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게 재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이제 막 땅거미가 지고 모든 하늘이 보랏빛과 주황색 노란색이 어우러질 때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는 그래도 배는 곯았는지,

거리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서 가정식을 시켜 먹었다.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고 허기가 채워지며 만족하는 내 신체 반응이 소름이 돋았다.

식탁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시야는 희뿌옇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 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 되지.."

가게를 나와서 인근에 사람이 잘 들지 않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태웠다.


한대, 두대,., 연이어 계속 피우며 "먹은 것을 게워내면 조금이라도 너에게 속죄가 될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그런 것 따위 아무 소용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을 거다.


이번일을 겪으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입버릇처럼 "아 죽어야겠다." "죽겠네 죽겠어.." "살고 싶지 않아""휴~ 나 이제 여한이 없다." 등 입으로 뱉는 말은

살고 싶은 의지가 충만할 때나 하는 말이란 것을.

대부분 자기가 더 살고 싶어서, 살고자 해서, 관심이 필요해서 발버둥 칠 때 필요한 액션이다.

정말 죽음이 코앞까지 온 인간은 놀라우리만치 침착하고 적막이 흐른다.

아무것도 기다려지지 않는다.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면 본인이 덜 아프게 사라지길 바라는 추악한 욕심만 그득그득 서려있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지가 되어 피했을 수도 있다.

여기저기 뿌려져 귀신이 아닌 사람을 내쫓는 팥이나 소금이 된 기분이다.


"허탈하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천천히 좀 나눠서 오라고, 빌어 쳐 먹을.."

입에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고, 또 눈앞에 블러가 적용돼서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고, 그러다 떨구고. 다시 또 쳐들고.

스스로 이해 못 할 기이한 행동만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검붉은 색이 되었다.

그 뭐지 꽃 중에 페트 블랙? 맘바 뭐 그런 비슷한 색깔로. 아무렴, 뭐든 이제 상관없었다.

나는 어디든 숨고 싶었다. 되도록 깊숙한 곳으로.


"딸랑 "

물방울 같이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아..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애써 무시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딸랑" 개운해지는 종소리가 울렸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들었다.

주변에는 어두컴컴할 뿐, 이렇다 할 변수가 없는 동네공원 전경이다.


"뭐야.. 무섭게"


날도 쌀쌀하고 아무도 없어서 왠지 시린 기운에 외투를 집고 일어났다.

그 순간, "딸랑" 또 종소리가 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아갔는데 자세히 보니 공원외곽 좁은 골목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헛 것이 보이나.."


감정에 절여진 고주망태가 된 사람이라도 찝찝함을 느낄 수 있나 보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홀리듯 그 골목을 향해 움직였다.

축축한 냉기가 발목을 감쌌다. 깨진 유리 조각과 담배꽁초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음습한 골목길.

벽돌 틈새로 힘겹게 자라난 잡초만이 유일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텁텁한 공기 속 희미하게 섞여드는 것은 눅눅한 흙냄새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듯한 묘한 향 냄새였다.

마치 오래된 책을 펼쳤을 때 맡을 수 있는, 시간을 머금은 듯한 향기였다.


골목 끝, 분명 도심이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시야가 탁 트인 곳이 나왔고,

거기에 나타난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목조 가옥이었다.

군데군데 벗겨진 짙은 갈색 외벽은 어둠 속에서 더욱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창문은 굳게 닫혀 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어 섣부르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왠지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은 창문 틈새와 삐걱거리는 나무 문 아래쪽을 따라 흘러나와 묘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건물 구조는 이전의 내 생각과 약간 달랐다.

어쨌든 결심한 이상 다리는 문 앞에 멈춰 섰고 가까이 다가가자, 문의 질감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낡았지만 왠지 모르게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녹슨 경첩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나무판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성스럽게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滿手來一貧去 (만수래일빈거)"


그 아래, 조금 더 작은 글씨로 "= 만일 ="이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낡은 나무의 질감과 서툰 듯 정성스러운 글씨체가 묘하게 어우러져, 단순한 가게 이름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딸랑"

조금만 힘을 주니 종이 울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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