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길

by 이해

모아둔 돈이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할 때가 왔다. 구인구직 글을 여기저기 뒤져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걱정하고 절망하기보단, 없으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내 하루 루틴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봐, 여기는 어때?"


구인 글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중심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글쓰기 지도자를 모집합니다.' 지도자라는 낯선 일자리가 흥미로웠지만, 망설여졌다. 내가 누군가를 지도하고 이끌어갈 수 있을까? 말도 잘 못하고, 무대에 서면 바보가 되어버리는데? 그와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가 꿈틀댔다. '두렵지만 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는 거야. 네가 지금 도전해서 잃을 건 아무것도 없어. 실패하더라도 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사실 수업하는 걸 걱정할 게 아니라, 면접을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했다. 지도 경력이 전혀 없었기에 떨어질 확률이 더 높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책을 낸 작가라는 사실을 어필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지원서를 보냈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내일 오후에 면접 보러 오라는 내용이 담긴.


나는 벌써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면접 장소로 향했다. 설렘 반 걱정 반. 떨려오기 시작했다. '합격하면 인연인 거고, 떨어지면 인연이 아닌 거야.'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곤 매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요즘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곳은 한적한 동네에 홀로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저, 면접 보러 왔는데요."

"아, 잠시만요! 커피 드시겠어요?"


나는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가 바로 제주라고 말해주듯, 정면에 감귤밭이 펼쳐져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맞은편엔 긴 파마머리에 힙한 감성의 옷을 차려입은 여성분이 따라 앉았다. 알고 보니 그분이 대표였고, 수업 공간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보내주신 지원서와 블로그에 쓰신 글들 흥미롭게 봤어요. 선생님에게 궁금한 게 많아요."


긴장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면접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대로 통과하는 거 아니냐며 김칫국을 마셨다. 기대감에 벅차오를 때쯤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걸 저희가 한 번 보고 결정할게요."


그랬다. 내가 책을 썼고 어쨌고 그건 플러스 요인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도자로서의 자질이었다. 어쩌면 여기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남들 앞에 서는 게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는 족족 실패만 하는 내가, 과연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포기할 수는 없다고. 무대공포증은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해 보자.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삶을 신뢰했다. 잘되면 삶이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고, 잘되지 않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과연 이곳은 어떤 쪽에 속할까? 부딪혀봐야만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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