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공포라는 벽

by 이해

발표 트라우마는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한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 우리 학교는 한 학년에 반이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곳이었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졸업을 할 때까지 쭉 함께 생활을 한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6년을 함께 할 친구들이기에, 애들과 잘 지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어느 날은 각자 발표를 해야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난하게 자신의 발표를 해내고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가슴이 너무 떨렸다. 발표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는 시선이 집중되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아이였다. 그와 대조적으로 머릿속은 백지처럼 새하얘졌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말하려 했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는 이미 고장 났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어버버 하는 내 모습에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후로 나는 무대를 기피하며 살았다. 안 할 수 있으면 무조건 안 하는 쪽으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서야만 할 때가 왔다. 대학 시절 과제 발표라던지, 학술제. 그리고 직장에서 매주 하는 컨퍼런스 등. 성인이 되어서도 어김없이 무대를 망쳐버렸다. 나에게 무대는 넘기 힘든 커다란 벽이었다. 앞으로 평생 무대에 서는 일은 없을 거라 믿었는데. 삶의 흐름이 내게 그 벽을 넘어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결전의 날이었다. 3차 면접일이 다가왔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연습과 실전은 엄연히 달랐다. 고작 4명에 불과했지만, 그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꽂히는 그 순간. 과거 그 여느 때처럼,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선 수업을 끝까지 이끌어나갔다. 끝까지 진행은 했지만, 수업의 분위기는 먹구름이 잔뜩 낀 거 같았다. 그것은 진행자인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너무 얼어 있는 거 같아요. 말소리도 작고 자신이 없어 보여요."


수업에 참여했던 대표님의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은 내게 적지 않은 상처를 주었다. 그리 상처받을만한 말은 아니었던 거 같지만, 그 순간의 나는 많이 여리고 연약해져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 애초에 누구를 가르칠 깜냥이 되지 않는 거야. 나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한 나를 쓰려하겠는가.


그날 밤, 대표님으로부터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메일을 열기가 무서웠다. 자질 부족으로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 담겨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도 열어봐야지.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하는데.


"오늘 수업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선생님도 지도 경험이 처음이시기에, 완벽하게 잘 해낼 수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첫 수업을 시작으로 겪게 될 많은 과정에서 선생님과 회원 모두가 성장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회원들 모두가 함께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이 수업이 가진 진정한 의미가 될 거 같습니다."


메일에는 뜻밖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나의 부족함과 초라함이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눈가가 촉촉해졌다. 대표님의 넓은 아량으로 인해 나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었다. 과연 내가 무대공포라는 벽을 넘고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일단 끝까지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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