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몸부림

by 이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기쁜 일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할 순 없었다.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고 하지만,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건 분명하다.


수업 공간을 처음 오픈했을 때부터 그랬다. 나를 포함해 6명의 지도자들이 모였고 각자의 수업을 개시했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어졌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하나둘씩 떠나갔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절반이 떠났다. 모두가 떠나갈 때 나는 꿋꿋이 남아 자리를 지켰다. 긴 기다림 끝에 첫 예약이 들어왔다. 첫 손님이 장기 회원이 되었고, 그 덕분에 공간이 폐쇄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내가 수업으로 버는 돈은 월 3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돈으로는 집세도 생활비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계좌에 찍혀 있는 숫자를 확인할 때마다 불안해졌다. 벌이가 마땅치 않으니 돈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이러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아닐까. 길거리에 나앉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죽음과 맞먹는 두려움이었다. 그래도 버텼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1년은 해보자고. 아니, 적어도 회원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는 계속해보고 싶었다.


알바를 구했다. 호텔 뷔페 주방에서 주말만 일하기로 했다. 조금은 숨통이 트였지만, 생활을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평일에 다른 일을 구하지 않는 건, 내 수업을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다양한 시간대에 열어두어야, 사람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계를 위한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으면, 지쳐서 다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해지 환급금을 받으려고 보험을 깨고, 청약 통장을 해지해가며 버텼다.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런 생활이 몇 달 지났을까? 호텔에서는 적자가 난다는 이유로 근무일 축소를 감행했다. 나는 더 이상 거기 있을 이유를 찾을 수 없어 그만두었다. 내 생활도 몇 달째 적자였으니까. 아아,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굶어 죽는 걸까. 옛 어른들 말이 맞는 건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두려움에 가득 찬 내 두 눈에 보였던 건, 다른 곳보다 높은 급여의 일자리였다. '베이커리 직원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뒤이어 덧붙어 있는 희망적인 말. '초보자도 가능합니다' 곧바로 연락했다. 신중히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돈을 많이 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 나는 이미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당장 일을 구하지 않으면, 생활이 붕괴될 거라는 두려움이 너무 컸기에.


어떤 곳에 들어서면,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기운, 에너지가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밝은 공간이 있는가 하면, 불편하고 무겁고 어두운 공간이 있다. 새 일터는 후자에 가까웠다. 첫날에 느낀 그 기운은 틀리지 않았다. 쉼 없이 이어지는 고강도의 업무, 초보자 가능이라고 했으면서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분위기. 8시간 동안 시달리다가 집에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이걸 일주일에 6일을 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게다가 수업이 있는 날은, 퇴근하자마자 주차장으로 달려야 했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수업 공간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또 회원분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에 들러 온몸에 밴 밀가루 반죽 냄새를 물로 씻어냈다. 부리나케 챙겨서 차에 오른 뒤, 폭주의 레이스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각이었다.


나는 며칠 만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했다. 불안에 쫓겨서 잘못된 선택을 내렸구나. 그래도 이미 여기에 와버렸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 배울 수 있는 건 배워가자는 마음으로 견뎌보기로 했다. 2주가 지났을 때쯤. 나는 이 생활이 나에게 점점 무리를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육체적인 피로가 쌓이고, 정신적으로도 계속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마음이 산만해지고 수업의 질이 점점 낮아졌다. 그만두는 선택을 내렸다. 도망쳤다. 사장님에겐 죄송했지만.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게 그리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버텨야 할 이유가 있는 곳에서 버텨야 현명한 거지, 그렇지 않은 곳에서 버티는 건 미련한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내 수업과 함께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어느 날, 내 사정을 들은 대표님이 말했다.

"저희가 이번에 피자 가게를 오픈할 거예요."

"아, 정말요? 축하드려요."

"혹시 괜찮으시면 거기서 일하실래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건, 내 수업 스케줄에 따라 근무를 조정해 주신다는 부분이었다. 낮부터 출근해서 일하다가 중간에 2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다시 내려와 일을 했다. 비록 최저 시급이었지만, 내 수업을 함께 병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돈을 저축할 여유는 없었지만, 생활을 유지할 여유는 생겼다. 힘든 상황을 겪을 때에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니, 어떻게든 돌파구가 생겼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이전 11화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