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에서 마이너스까지

by 이해

정기적으로 오시던 회원님은 떠나갔다. 새로운 예약은 뚝 끊긴 지 오래였다. 나는 1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을 새로 단장하기로 했다. 두 달 정도의 준비 기간. 입문자도 글쓰기와 명상을 좀 더 쉽고 가볍게 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면 좋을 거 같아서, 보이차에 대한 책을 사고, 차실에 몇 번 다니면서 공부했다. 새 수업 소식에 지인들이 찾아와 주었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십 대 후반의 커플, 내 삶을 돌아보기 위해 제주여행을 왔다가 들린 마흔의 여성 등. 그중 일부는 수업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온함을 느꼈다며 너무 좋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때 나는 내 수업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번엔 어쩌면 잘될 수도 있겠다며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예약이 뚝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피자 가게도 낮에 장사가 잘 되지 않는 바람에 근무 시간이 축소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었어도 당장의 생활비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삶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동차 보험료는 꽤 큰돈이었다.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빠지는 거라 대비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빠져 있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일단 카드 할부를 해서라도 위기를 모면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는 거라지만. 내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편물 하나가 날아왔다. "기한 내로 입금하지 않을 시, 계약 해지 사유가 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 인상으로 나는 당장 수백만 원의 돈을 내야 했다. 좀 미리 알려주면 좋았으련만. 갑자기 이번 달 안으로 돈을 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극도로 불안해졌다. 불안해지니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 어떡하지? 답이 없구나. 이러다 정말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구나. 이렇게 노숙자 신세가 되는 건가? 공사 현장 일이라도 시작해서, 급한 불을 꺼야 하나? 하지만 나는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두려움에 휩쓸려 내린 선택이 가져올 비극을.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우리 집의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대학을 졸업한 순간부터 나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인지 많이 망설였다. 서른이 넘어 손을 벌린다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차라리 은행 대출을 받을까? 고민하던 순간에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몇 달 전 아빠와의 술자리. 아빠의 얼굴은 술기운으로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동현아, 너 뒤에는 항상 아빠가 있다. 그러니 힘들 땐 언제든지 얘기해." 지금이야말로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인 거 같았다. 그러나 막상 말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 나 3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 내가 다달이 갚을게."


아빠는 내 사정을 듣고선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들이 돈에 허덕이는 모습이 마음 아프고 걱정스러웠으리라. 아빠가 준 돈으로 급한 불을 껐다. 한숨은 돌렸지만, 나에게는 이제 빚이 생겼다. 마음이 무거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이 힘든 순간도 결국 지나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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