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였다면 불안에 떨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투덜댔겠지만,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하면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삶이 나아지길 바라면서 변화를 거부한다면 그건 모순되는 일이지 않은가. 내 앞에 다가온 지금 이 변화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곧바로 불안함이 사라지진 않았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그만큼 강렬한 두려움을 몰고 왔다.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구인 글을 찾아보았다. 일자리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조건에 맞는 곳은 드물었다. 글쓰기를 병행해야 했기에, 이런저런 조건들이 많이 붙었다. 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지 않으면서도, 급여는 괜찮아야 하고, 거리는 너무 멀지 않아야 되고, 주말은 쉬어야 하고. 몇 날 며칠을 찾아다녔지만, 그 많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없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어졌지만,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빵집에서 얻은 교훈이랄까. 그저 묵묵히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2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꽤 괜찮은 일자리가 나타났다. 어쩌다 보니 또 피자 가게였다. 집과 가까웠고, 급여도 괜찮았고, 일요일에 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간대가 괜찮았다. 여길 다니면서 충분히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월요일 오후 4시에 매장으로 오세요." 보통은 이때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약속한 날이 되었고, 나는 매장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면접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 뒤로 또 한 사람이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면접 보러 왔습니다." 아, 경쟁자가 많구나. 어쩌면 안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마치 해탈한 수행자처럼,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속으로 말하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살면서 이제까지 본 면접 중에 가장 마음이 편했다. 일할 데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결국 나에게 딱 맞는 곳을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만약 떨어진다면 인연이 아닌 것일 뿐인 거지. 그런 마음으로 임해서인지 여유가 있었다. 잘 보이려 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었다. 평소처럼 웃음기 많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면접 자리에서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사실 저희가 이번 주 내내 면접이 있어서, 당장 확답은 드릴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대신 이번 주 내로 꼭 연락을 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면접이 끝난 지 20분쯤 되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아까 면접 봤던 곳인데요. 분위기와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채용하려고 해요. 괜찮으시면 모레부터 나오시겠어요?" 분명 이번 주 내내 기다려야 했던 상황이었는데. 30분도 안 되어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답했고, 비록 파트타임에 불과했지만 당장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첫 출근 날, 약간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매장으로 들어섰다. 일터의 분위기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종일 바빴지만 체계가 잘 갖춰져 있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친절하고 좋았다. 일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을 때쯤,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게 되었다. "혹시 정직원 할 생각 없어요?"
정직원이라고 하니, 지옥 같았던 빵집의 기억이 되살아나 망설여졌다. 사실 '평생직장'이라는 게 사라진 요즘 같은 세상에 정직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근무 시간대와 급여, 복지 등 조건을 듣고 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에 출근이라서 비교적 아침 시간이 여유로웠다. 아침형 인간인 나에게 이 부분은 큰 메리트였다.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며,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게다가 병원 일을 할 때보다 80만 원 정도 향상된 월급이었다. 보통은 급여가 높으면, 업무 강도가 센 편이다. 하지만 똑같은 돈 주고 병원 일을 할래? 여기를 할래?라고 묻는 다면 후자를 선택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곳의 근무 환경은 아주 좋은 편이었다.
세상에, 나는 애초에 파트타임만 뛸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열흘 만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삶의 흐름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마음을 열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면, 삶이 주는 선물 같은 기회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