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뒀다며? 지금은 뭐 해?"
퇴사하고 나서는 이 물음에 답하는 게 가장 곤란했다. 섣불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장인일 땐 "병원에서 일해요." 한마디면 대화가 끝이 났는데. 지금은 자질구레하게 설명해야 하는 이 상황이 싫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도 예상이 갔다. 그것은 대체로 부정적인 시선이 담긴 말들일 터.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길뿐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그런가, 하긴 내가 무슨 재주로 그런 걸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과 함께 포기할지도 모른다.
설 명절 때였다. 친척들이 한 집에 옹기종기 모였다. 어른들은 서로 반가운 마음을 표하며 인사를 나눴다. 부모님 옆에 서있던 나도 꾸벅 인사를 했다. 친척 어른 중 한 분이 말했다. "오, 그래. 오랜만이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제발 그 말만은 하지 않으시길 바랐는데. 뒤이어 이어지는 질문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일은 잘 다니고 있고?"
"아니요. 그만뒀어요."
"그럼 지금은 뭐 하고?"
"그냥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보고 있어요."
"이것저것? 어떤 건데?"
집요함에 지쳐 솔직하게 글을 쓰고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그분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그거, 돈이 되긴 하니? 이제 나이도 있는데 돈도 모으고 그래야지."
"아직은 별로 못 벌죠. 그래도 알바하니까 괜찮아요."
그러자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알바'라는 단어 때문일까. 그런 동정 어린 시선을 받는 게 속상했다. 꼭 돈이 되는 일만 해야 하는 건 아닌데. 전업을 삼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성과는 내고 있는데. 어른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에 괜히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누구보다 내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직장을 구하지 않고 알바를 하며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보다 못한 아빠가 어디 괜찮은 직장이라도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 난 직장 안 들어갈 거야." 직장생활에 신물이 나기도 했었고,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님은 그저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해나가는 것. 내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은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지만,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빠. 엄마,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더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듯 보이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한때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이걸 하면 남들이 나를 인정해 줄까?' 또는 '이걸 했을 때 남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와 같은. 모든 선택의 기준이 타인의 마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 삶을 주도하는 건 타인이었다. 분명 나에게 주어진 내 인생인데 말이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깨달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그저 묵묵히 내 갈 길을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실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인정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만의 길을 간 사람들이었다. 타인이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믿어주면 될 일이었다. 내가 도전하고 있는 일들이 결코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조차도 나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굳게 다짐한다. 내 영혼의 끌림을 따라 나의 길을 걷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