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줄은 알아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들었던 말이다. 가시처럼 박혀서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회로 나가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끊임없이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게 곧 사회생활이었으니까. 게다가 요즘은 쓸모가 없어지면 새로운 인력으로 갈아치워 버린다는 말에 겁이 났다. 나는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잔뜩 힘을 준 채 직장이라는 세계로 발을 들였다.
첫 직장은 재활전문 병원이었다. 대학 동기들도, 선배들도 다 기피하는 곳. 그만큼 힘들기로 소문난 곳. 하지만 그런 걸 따질 여력이 없었다. 다들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할 때,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졌으니 말이다. 안타까운 건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준비를 하던 그 시기에 여러 병원에서 많은 인력을 보충했다. 그랬으니 내가 들어갈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뒤늦게 싸한 느낌이 등줄기로 타고 스쳤다. 진짜 망했구나. 그러다가 유일하게 자리가 난 곳이 내 첫 직장이었다. 어쩌겠나. 다른 선택지가 없는데 여기라도 가야지.
면접 자리엔 나를 포함해 3명의 사회초년생이 있었고, 3명의 병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슨 1대1 소개팅도 아니고. 그때 당시엔 자신감이 없어서 나를 써주기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제발, 뽑아주세요. 내가 이렇게 잘하려고 애쓰고 있잖아요.' 속마음을 글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잘하려고 애쓸수록 잘할 수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말에 준비한 답을 열심히 읊었다. 그 순간 한 원장이 껄껄대며 웃었다. 덩치는 곰처럼 큰데 안경을 썼다. 어울리는 듯 아닌듯한 콧수염을 기른. 그 원장은 내 대답의 내용 때문에 웃은 게 아니었다. 내가 너무 얼어붙어 있어서 말투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엔 경직된 표정과 몸짓으로 애쓰는 꼴이 꽤나 웃겼나 보다.
내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져서인지, 아니면 단지 인원을 채워야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첫 출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근무할 층은 6층이었다. 건물 여기저기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8층짜리 건물인데, 좁디좁은 엘리베이터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열일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자 꿉꿉하고 큼큼한 냄새가 났다. 왠지 모르게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 분명 기분이 좋았었는데 그 건물 안에만 들어서면, 기분이 나빠졌다. 장기 입원 병실을 갖고 있는 병원이라는 게 그런 듯하다. 갑작스러운 뇌경색이나 사고로 인한 뇌출혈. 그로 인해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곳에는 어쩔 수 없는 침울함과 상실감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나는 하루 종일 노련한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어떻게 치료를 이끌어가는지 보았다. 같은 뇌경색 환자여도 증상이 달랐고 호소하는 것, 원하는 것도 달랐다. 그날 하루 만에 자그마치 13명의 환자를 만났다. 첫날부터 이 병원의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30분씩 13명, 즉 6시간 30분 동안 사람을 상대하는 일. 치료실과 환자대기실엔 오늘의 스케줄표가 붙어 있었다. 고작 종이 한 장일뿐인데. 나는 그 종이를 볼 때마다 숨이 막혔다.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환자 이름들이 앞으로 펼쳐질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 한 잔을 겨우 마시고, 화장실 갈 시간도 빠뜻할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환자분에게 신입이라고 절대 말해선 안 돼."
선배들은 내게 말했다.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예민한 편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몸이 아프기도 하고. 병실이라는 작은 감옥에 갇혀 있는 기분인데, 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까. 누구나 치료를 잘하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나처럼 이제 들어온 신입 치료사는 기피 대상 1호였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겪고 싶지 않다고 외쳐도 어김없이 닥쳐오는 불행한 사건들처럼. 그것은 순전히 운의 영역이었다. 재수 없게 걸리면, 환자 입장에선 열불이 터질 것이다. 언제라도 폭발할 듯한 용암처럼, 들끓는 불만과 화는 어리바리한 신입에게로 향했다.
이것이 텃새라는 걸까. 치료 시작을 위해 휠체어에 앉아있는 환자들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넬 때마다. 나는 환자들의 불만과 불신이 섞인 눈빛을 감내해야만 했다. "자네는 일한 지 얼마나 됐는가?"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환자들도 있었다. 나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대충 얼버무린 후 화제를 돌렸다. 환자는 불만으로, 나는 긴장감으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주 무겁고 싸늘한 기운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의 아픈 몸을 접촉한다는 건,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지시할 땐 더더욱 손이 떨린다. "누워보실까요?" "이제는 앉아보실래요?"
환자분은 아무 대답 없이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였지만, 나는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약간의 신뢰조차 없으니 내 모든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그래도 이런 분은 착하신 편이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아주 날이 서있는 사람들도 있다. 선배들도 까탈스러우니 조심하라고 일렀던 요주 인물.
"내일부턴 이 환자 치료하게 될 거야."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오는 건지. 운도 정말 없지. 나는 그분의 담당 치료사가 되고 말았다. 조심하라는 말에 긴장감은 하늘까지 치솟았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손에 땀이 났다. 그날따라 치료실은 한없이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선배들이 경고했던 요주인물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던 단발의 중년 여성이었다. 빨간 테두리의 뿔테 안경을 썼고, 까다로워 보이는 얼굴을 한.
그분의 첫마디는 꽤나 날카로웠다. 이제 시작한 네가 뭘 알겠어라는 의미가 담긴.
"내 병명이 뭔지 알기나 해요?"
"알고 말고요. 척수손상이시잖아요."
그분은 내 대답에 입을 꾹 닫았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신입이라도 그렇지. 그래도 엄연히 대학 3년 공부하고, 실습도 하고, 시험도 치고 들어왔는데.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나는 어설픈 손놀림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뭐부터 해야 되는 걸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선배들이 했던 걸 따라 해 봐야지. 겉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해 보였지만. 분명 어떤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났으리라.
"아이고, 치료받으니 더 아프기만 하고."
입 밖으로 불만 섞인 짜증이 마구 터져 나왔다. 어떻게 그 작디작은 입 안에 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던 건지. 못 해 먹겠다부터 시작해서 뭘 알고 치료를 하는 거냐. 당장 치료사 바꿔줘라와 같은 온갖 가시 돋친 말들이 가슴에 푹푹 박혔다. 피투성이가 된 건 아니지만, 쭈글쭈글해지고 작아졌다. 공기가 빠져버린 풍선처럼. 작아지고 나니 모든 게 거대하게 느껴졌다. 환자가 무섭고, 전쟁터 같은 병원이 무섭고. 사회가 무서웠다. 이러다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이리 잘하는 게 없지. 이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