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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y 08. 2019

진작 여행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100일 글쓰기 #후회

더 일찍 여행을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물론 어렸을 때 가족 따라 동남아와 중국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도 있고, 잠깐 미국에 살며 주요 도시를 여행해 본 경험도 있지만. 그런 여행 말고 진짜 나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여행 말이다. 누군가가 대신 정해주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서,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직접 준비해서, 혼자 떠나는 그런 여행은 취직하고 1년 지나고서부터, 내가 내 돈을 벌기 시작한 사회인 2년 차에야 비로소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올해 본격 여행자가 된 지 4년 차라고 볼 수 있겠다. 


첫 여행에서 받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학생 시절 읽었던 어느 한 에세이로 인해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착륙했던 그 날, 2016년 6월 4일. 책, 잡지, SNS에서만 보고 상상했던 광경이 실제로 내 눈 앞에 펼쳐져있고, 또 직접 경험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자극을 느끼고 나의 감각들이 반응할 때. 심쿵하다 못해 심장이 아픈 느낌이 수십 번쯤 왔는데 아마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구나' 하는 벅참과 '세상에 이렇게 멋있고 신기한 게 많구나' 하는 놀라움 때문이었을 거다. 


'딴 세상'에 왔음을 실감한 순간


베를린 3일에 이어 드레스덴 1일, 암스테르담 3일, 헬싱키 1일 들렀다 오는 일정까지, 제대로 즐기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후 내 생각은 온통 '다음 여행' 뿐이었다. 궁금했던 도시에 실제로 가보는 설렘은 꼭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다시 느껴보고 싶은 중독과도 같았다. 그 후로 나는 회사에서 여행을 제대로 잘 다니는, 아니 다르게 말하면 '영리하게 휴가를 잘 쓰는' 사람으로 소문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행 간다고 하면 '또 가?' 소리를 듣는 여행 중독자가 됐다.  


2016년 9월, 옆 나라 일본도 이렇게 다르구나 문화충격을 받았던 도쿄

2017년 2~3월, 처음으로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해외 도시 멜버른 시드니

2017년 5월, 두번째라 제법 익숙하게 돌아다녔던 도쿄 

2017년 9월, 추억팔이 겸 커피와 맥주로 채운, 가장 나다웠던 여행 포틀랜드 유진 시애틀

2018년 2월, 천천히 차분히 조용히 살고 싶어 찾아간 치앙마이 

2018년 5월, 일본 감성이라는 걸 제대로 느껴본 교토 오사카  

2018년 9~10월, 한 달 휴가를 받고 떠난 유럽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스트라스부르 루체른 베른 인터라켄 아비뇽 마르세유 아를 니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브뤼셀 브뤼헤 겐트 런던 에든버러 파리

2019년 2월, 내가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효도가족여행 후쿠오카 우레시노 나가사키 

그리고 다가오는 2019년 5월 말, 더 큰 세상을 보러 갈 뉴욕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나름 알찼던 지난 여행들 덕분에 이제 내 삶에 여행이 필요한 이유 두 가지 정도는 떳떳하게 댈 수 있다. 하나, 여행은 나 자신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세상은 넓고, 내가 지금껏 안다고 자부해온 세계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구나,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라는 걸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가본 적 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 때, 세상 모든 게 신기한 아이처럼 직접 탐험하고 경험해보며 여행자는 성장한다고 믿는다. 


또 하나, 더욱 넓어진 선택지 안에서 나의 취향과 주관이 한층 뚜렷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10종 크레파스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색을 고르다가, 다른 곳에는 100종, 1000종 크레파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중에서도 인디고 블루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라는 걸. 더 많이 알고, 더 큰 세계를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외부의 관점과 내면의 소리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과정, 여행. 종종 그런 생각을 해본다.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더 큰 세상을 여행해봤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까. 20대 중반의 여행을 통해 20대 후반인 지금에야 내가 나를 좀 알 것 같은데. 만약 10대나 20대 초반의 여행을 통해 20대 중반에 사회에 진출했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상상도 못 하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다. 5살 어린 내 동생에게도, 주위 후배들에게도 적극 여행을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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