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 북촌 - 제주 - 합정 - 망원 - 용산 - 성수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위례 유주얼
스타필드 옆으로 가게 이전하고는 처음 가본 곳. 장소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온통 새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흔적을 남기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
쿠키 맛집으로 유명한 곳답게 쇼케이스에 진열된 쿠키가 눈을 사로잡는다. 예전에 비해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고, 조금 늦게 가면 몇몇 인기 쿠키는 품절일 정도다. 쿠키는 정말 진하고 달아서 한 입 베어 물면 기분이 좋아질 정도인데, 같이 먹을 플랫화이트가 너무 묽어서 밸런스가 살짝 아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앉아서 먹기에는 여기 자리가 너무 불편해서.. 포장을 추천한다.
2. 북촌 그린냅
시끌벅적한 주말의 삼청동 거리에서 골목 안으로 살짝 들어오면 숨어있는 조용한 한옥집. 크지는 않지만 나름 오밀조밀하게 마당도 있고, 마루도 있고, 테이블석도 갖췄다. 특이하게 메뉴에 디저트류 대신 식사류로 아보카도 간장 계란밥과 쌈밥이 있어 왠지 정겨웠다. 계란밥을 뚝딱 비우고 나니 꼭 이웃 친척집에 놀러 가 한 끼 먹고 쉬다 온 기분이었다.
고양이 두어 마리가 집 안팎을 막 돌아다닌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이라 갈까 말까 망설였던 곳인데, 자리에 놓여있던 <후추의 녹색단잠>이라는 그림 동화책을 보고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나는 아직 낯선 후추를 보듬어주지는 못하지만 경계하고 싶진 않아졌다.
3. 북촌 이분의일라운드
노란 창 테두리 사진 하나 보고 찾아간 곳이었는데 유레카! 내 취향과 90% 일치하는 뜻밖의 공간을 만났다. 옛날 한옥집을 개조해 나무 기둥과 서까래는 그대로 두고, 모던한 가구와 소품들로 내부를 장식해 세련된 카페로 재탄생시켰다. 옛것을 잘 가꿔 보존하고, 그 안에 트렌디한 감성으로 채워 넣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이 공간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었다. 나만 알고 싶으니까 이 정도로만 써야지.
4. 성수 커피식탁
한 3년 전이었나. 지금처럼 앙버터 디저트가 흔하지 않았을 때, 이곳에서 빠다코코넛 사이에 팥과 버터를 샌드처럼 끼워 넣은 '앙빠'를 먹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더랬다. 사장님이 바뀌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시 찾은 커피식탁에 앙빠는 없었고, 궁금했던 얼그레이 케이크도 하필 내가 간 날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디저트보다는 공간 자체가 더 기억에 남는다. 정말 좁은 가게인데 큼지막한 식물이 군데군데 놓여 있어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귀엽고 아기자기한 색연필 일러스트 같은 곳. 오래오래 그렇게 성수동 골목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5. 제주 앙뚜아네트 용담점
관광객을 위한 대형 카페라 이곳에 대한 소감을 남기는 게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렵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간이어야 하기에 설령 나에게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해도 불평하지는 않고 싶달까. 예를 들면 커피 마시는 사람과 식사하는 사람이 섞여있는 혼잡한 분위기와 창가 자리를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자리싸움 같은 건 감안해야 하는 것.
여긴 그냥 뷰가 다했다. 이렇게까지 바다를 가깝게 볼 수 있는 창가 자리가 많은 카페는 흔치 않다. 게다가 나름 관광지인 용두암까지 잘 보인다. 이 정도면 큰 욕심 없이 공항 돌아가기 전에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기 적당한 듯하다.
6. 제주 김녕 쪼끌락
유행은 지난 것 같지만 그래도 김녕에 오니 제일 먼저 '김녕 라떼'가 떠오르긴 했다. 김녕 바다를 닮은 파란색 오렌지맛 시럽을 넣은 라떼고, 보이는 것처럼 달고 시원하다. 김녕 라떼 외에도 제주 라떼, 돌하르방 라떼 등 제주에 놀러 온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열심히 개발하시는 것 같다.
나는 테이크 아웃했지만, 실내 창가 자리나 테라스에서도 바다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잘 되어있으니, 여유 있으면 이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7. 합정 빌리프커피로스터스
2~3년 전에 몇 번 와보고, 진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추억의 카페. 여전히 그 느낌 그대로, 변한 게 없다. 특히 널찍한 지하 공간이 참 멋있다. 분위기 있고, 넓은 테이블부터 계단석까지 좌석도 다양하게 많다. 지하에서 직접 로스팅을 하는 곳이라 커피도 더 맛있는 듯하다. 누구를 데려와도, 무난하게 남녀노소 다 좋아할 만한 카페.
8. 망원 비전스트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신상 카페. 들어서자마자 벽에 걸려있는 사슴 헌팅 트로피와 말 그림에 시선강탈. 전형적인 미국 오리건 st라고 느낀 건 내 착각인 걸까. 아무튼 분명 대낮인데도 저녁같이 차분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가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릴 만한 메뉴로 따뜻한 카페라떼를 시켜 기분 좋게 마시고 나왔다. 버터 푸딩과 초코 크로와상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단 게 안 당겨서 못 먹고 온 게 좀 아쉽긴 하다. 라벨이 멋진 더치커피 큰 병도 사 올걸, 뒤늦은 후회도.
9. 위례 카페사운드인
날씨 좋은 주말에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나가본 집 앞 동네 카페. 위례에서 가장 큰 상가 건물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소위 말하는 '감성 카페'가 있다는 게 반전.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아했을 것 같다. 전혀 기대 안 한 애플 머핀이 맛있어서 놀랐다. 디저트류를 다 직접 만드시는 것 같은데, 가격도 착해서 다 하나씩 맛보고 싶어 졌다.
테라스를 문을 열어주시니 이 카페의 매력이 확 살아났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중앙광장의 활기찬 분위기가 테라스를 넘어 카페 내부까지 온전히 전해진다. 물론 아파트 뷰 마저도 예뻐 보이는 계절이라 더 좋았던 거겠지.
10. 용산 문랜딩
서울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용산구 동빙고동-보광동 일대. 낯선 동네의 언덕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런 데에 카페가 있다고? 싶을 정도의 골목길에 'COFFEE'라고 내건 작은 가게가 하나 나온다.
여기 뭐지? 분명 서울 한복판인데, 황량한 미국 중서부 하이웨이를 대여섯 시간 달리다가, 지쳐서 잠깐 쉬려고 대애애충 아무 데나 들어갔던 것 같은, 인적 없는 시골 다이너st 바이브가 느껴진다. (좋다는 말) 진짜 8~90년대의 올드한 아메리칸 감성을 제대로 구현해놓은 곳이라, 용산 미군부대 처음 들어가 봤을 때만큼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비주얼부터 미국스럽게 투머치한 파르페가 대표 메뉴인 것 같은데, 언덕길을 올라온 터라 목이 말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나름 아메리카가 들어가니까, 대충 느낌은 통한다.
11. 성수 STDO
지나가다가 빨간 벽돌 건물이 예뻐서 뭐 하는 덴가 그냥 한번 들어가 봤다가 빵 사들고 나왔다. 빵 생각은 1도 없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빵들을 보고 정신 차려 보니 골라 집고 있더라. 서울숲 뒤편 골목에 이렇게 널찍한 카페 흔치 않은데. 언제 한번 빵 좋아하는 친구들 데려와서 시간 보내기에도 괜찮을 듯. 아, 카페 이름은 '스튜디오'라고 읽으면 된다고 한다.
12. 성수 ILND
요즘 카페 이름은 이렇게 모음 생략하고 알파벳 네 개로 줄여 쓰는 게 트렌드인가. 아일랜드, 말 그대로 섬이라는 뜻인데 성수동 한복판에서 묘하게 진짜 섬 느낌이 나기도 한다. 큼직큼직한 초록 식물들이 모여있는 곳은 꼭 작은 정글 같고, 벽에 붙어있는 파도 사진은 너무 생생해서 진짜 바다처럼 시원하다. 'ILND'라는 자체 브랜드로서 직접 제작, 판매하시는 듯한 캠핑 또는 아웃도어 라이프 용품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테이크아웃 컵에 배기지 태그 모양의 노란 라벨을 붙여주는 것도 센스.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근처 서울숲 산책하며 마시면, 이게 바로 휴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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