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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Jan 26. 2021

글쓰기를 주저하게 되는 마음들

이렇게 '아무 글'이나 쓰는 건 오랜만이라

나는 늘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꾸준히 쓰던 시절도 있었고, 글 쓰는 직업을 준비해보기도 했고. 한때는 '특기는 글쓰기'라고 부끄러움 없이 소개할 정도로 재능 있다고 믿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글안써져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글을 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서로 자기부터 꺼내 달라며 아우성 대는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것들을 딱 맞게 표현해주는 적절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입 밖으로나 손 끝으로 나오는 도중에 턱 막혀버려 결국 내 안에만 잔뜩 쌓여간다. 다른 이들과 공유되지 못하고 세상 빛도 한 번 못 본 채, 불쌍한 내 감정들은 그렇게 암흑 속에서 쓸쓸하게 생을 다해버리고 만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얘기를 하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내 얘기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의 찌질한 면, 우울한 면, 이기적인 면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사회생활 가면을 쓰며 잘 감추고 있는 걸 굳이 오픈할 용기가 안 난다. 또 원래 성격이 '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쓰면 그걸 보는 다른 사람들도 힘들 텐데'라며 쓸데없이 남의 감정에 이입하는 편. 그럼 나쁜 얘기들은 거르고 좋은 얘기만 하자니 요즘 내 인생에 좋은 일이 별로 없다. 셀프 검열이거나 소재 고갈이거나. 글을 쓰고 싶어도 뭘 써야 할지 몰라 쓰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특히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걸림돌이다. 내용을 보고 비웃진 않을까, 표현이 오글거린다고 하지는 않을까, 온갖 불길한 상상이 다 든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싸이월드나 SNS에 무심코 달았던 그런 댓글들이 나이 먹도록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지금은 이 브런치도 필명으로 운영하고, 현실 인간관계에서 절대로 내 브런치를 알리지 않는다. 글 쓸 때는 철저히 제2의 자아로 분리되는 게 마음 편한 것 같다. 근데  쓰질 못하니..


그럼 차라리 부담 없이 혼자만 볼 수 있는 공간에 비공개로 쓰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또 그건 싫다. 기밀문서나 비밀 일기 같은 게 아닌 이상, 글이라는 것 자체가 쓰는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해낸 것이고 그게 읽는 사람들에게 전해져 공감이 형성될 때 가치가 있는 거라고 믿기에, 내가 쓰고자 하는 글들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또 나도 사람이라 아무 댓글도 없으면 슬프고, 잘 읽었다는 댓글이 달리면 심장이 나댈 정도로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온 마음을 다해 쓴 글에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한없이 외로워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너무 당연한 건데 이걸 왜 내가 설명 내지는 설득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싶은 일들. 이를 테면 내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데 나라 출산율 걱정이라며 갑자기 이기적인 사람 취급하거나, 어차피 남자들도 너 안 좋아한다고 황당한 말을 던지면 거기에 대고 뭐라고 대응해야 하는가. 그런 황당한 반응에 굴하지 않고 진짜 내 얘기,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공부하고 지금보다 훨씬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두려움과 타인의 시선에 이렇게나 초연하지 못한 나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어 용기를 내본다. 나는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한다. 어쩌면 그것들을 분출하지 못해 그동안 마음이 아팠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내가 더 나다워지기 위해서 다시 글을 쓰려한다.


그 다짐의 첫 걸음으로 맥주 한 캔 들이키며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고, 퇴고나 자기 검열 없이 그냥 발행해 버릴 거다.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처럼 잘 쓰려는 욕심은 버리고 우선 쓰자, 계속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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