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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Jan 18. 2020

내 취미는 공간 수집  

세라 W. 골드헤이건의  <공간 혁명>을 읽고 

지도에 별표가 빽빽하다. 평소 SNS와 잡지에서 보고 '여긴 꼭 가야 해!'라고 마음먹은 곳들을 즐겨찾기에 추가해둔다. 그 별표들을 지우고 또 새로운 별표들을 찍으러 1년에 서너 번은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에 있는 동네 한 군데를 골라 이곳저곳 탐방하러 나선다. 주로 카페, 서점, 편집샵, 소품샵 같은 상점들에서 시간을 보내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녀와서는 사진과 짤막한 글로 나름의 감상을 기록해둔다. 

아직 안 가본 곳만 카카오맵 794개, 구글맵 셀 수 없음

이것들을 모두 '여행'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카페 투어'라기에는 커피 맛도 잘 모르고 디저트도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애매했다. 나는 그냥 멋지고 특색 있는 공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런 나의 취미생활을 '공간 수집'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공간들을 한데 모아 간직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각 공간들이 주는 분위기와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는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공간을 수집하는가. 그렇게 여러 군데 다녀보고 나에게 남은 '좋은 공간'은 어떤 곳들일까. 단순히 '좋다', '멋있다' 같은 주관적인 느낌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설득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나름의 감상 기준을 세워볼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공간 수집 활동을 위해 그 답을 찾고 싶어 졌고, 세라 W. 골드헤이건의 <공간 혁명>을 읽었다. 




나는 왜 여러 공간을 찾아다니는가 


1.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 삶에 지칠 때면 맨날 오가는 집-회사-집이 아닌 다른 제3의 공간에 나를 잠시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정 자극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나면 그것이 기분 좋은 자극이 아니더라도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 반복되는 건축 환경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한다. 정형화된 일상 패턴에 익숙해지고 그런 타성에 젖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듯하다. 


2. 추억을 되새기고플 때. "자전적 기억은 장소에 의해 되살아난다"라고 한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배경이 된 장소가 함께 생각나고, 우연히 어떤 공간을 보고 같거나 비슷한 곳에서 있었던 좋았던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좋은 기억을 다시 불러와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3.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이 필요할 때. 책에 관련 내용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다른 이들의 취향을 가장 직관적이고 총체적으로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정성과 애정이 깃든 공간에 들어서면, 나의 온 감각이 곤두서서 그 공간의 주인의 취향을 파악하려 한달까.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공간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다른 이의 취향을 탐색하며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내 취향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좋은 공간'이란?


1. 적당한 자극을 주는 곳. "과도한 자극을 주는 환경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자극이 너무 적은 환경은 기력을 떨어뜨리고 사람을 권태롭게 만든다"라고 한다. 내가 무언가에 몰두해야 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영감을 받아야 하는 곳에는 임팩트 있는 자극이 있지만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만. 내가 휴식을 취하거나 놀고자 하는 곳에는 다른 자극들 보다는 나 자신 또는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만. 


2. 강압적이지 않은 곳. "공간이 행동을 유도한다"라고 한다. 억지로 유도하거나 눈치를 주거나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닌, '넛지' 효과를 이용해 부드럽게 유도하는 공간에서 그런 약속들이 더욱 지속 가능하게 잘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공간 설계가 단순히 건축 설계가 아닌, 행동 유도 설계임을 알아야 한다.  


3.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곳. 사실 마음 편한 곳이 최고다. 자연이 주는 상쾌함과 고요함. 집이라는 곳이 주는 안전함과 따뜻함. 이 모든 걸 다 갖춘 곳이 있을까. 자연과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갈 수 없는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그런 안정을 줄 수 있는 공간이 앞으로 크게 각광받을 것 같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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