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 위례 - 삼전 - 하남 - 성수 - 삼청
5월에서 갑자기 10월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카페 투어 권태기' 같은 게 왔던 것 같습니다. 누가 먼저 신상 카페에 가봤나 겨루는 경쟁심리,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는 카페의 본 목적을 상실한 기나긴 웨이팅과 과도한 인증샷, 너무 빠르게 소모되는 유행 같은 것들에 싫증이 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고 싶었던 공간을 찾아가 다양한 취향을 경험해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여유를 즐기는 일이 여전히 저에게 소소한 만족감을 주는 취미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지금 가장 핫한 곳들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본 곳들에 대한 주관적인 기록이라는 취지에 맞게, 다시 '지도 위에 별표' 시리즈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그 사이에 미처 기록해두지 못한 카페들을 이렇게 뒤늦게나마 남겨봅니다.
1. 을지로 알렉스룸
굉장히 을지로스러운 힙한 공간. 낮에는 커피, 밤에는 바로 운영되는데 솔직히 이 분위기는 무조건 술 아닌지. 전체적으로 매우 어두운 편이고, 조명 컬러도 요란해서 딱 술술 마시고 취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음료나 디저트보다 술과 안주 메뉴도 훨씬 다양한 편. 을지로 근처에서 밥 먹고 간단하게 2차로 한 잔 더 하러 가기 좋은 곳으로 추천한다.
2. 위례 위클리커피 2호점
위례역 부근 1호점보다 공간이 좀 더 넓고 쾌적한 위례 광장 쪽의 2호점. 익숙한 얼굴의 로고가 반겨준다. 크림라떼가 가장 유명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위클리 라떼가 취향저격이다. 너무 헤비하지 않은 은은한 단맛과 극강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커피에 곁들일 수 있는 파운드 케익 종류도 다양하다. 옛날에 1호점에서 맛있게 먹었던 프로슈토 토스트는 이제 안 하시는지 궁금.
3. 위례 에스프레소 그자체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에스프레소 메뉴를 즐길 수 있는 곳. 개인적으로 오네로소와 여름 시즌 메뉴였던 커피 그라나따를 즐겨 마셨다. 친절한 사장님들 덕분에 갈 때마다 늘 기분 좋은 곳. 하지만 다른 에스프레소 바처럼 스탠딩 바 형태가 아니라서 회전율이 느리고, 좁은 상가 골목 앞에 간이 의자 같은 곳에 앉아 마셔야 해서 다소 불편하고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는 단점도 있다.
4. 삼전 카페 온실
밖에서 볼 땐 평범한데 지하로 내려가면 흡사 비밀정원 같은 신세계가 펼쳐진다. '온실'이라는 가게 이름답게 곳곳에 여러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고, 한쪽에는 초대형 스크린 위로 숲이나 바다 뷰가 펼쳐진다. 빔 프로젝터로 쏜 영상일 뿐인데도 진짜 자연 속에 와있는 것처럼 멍 때리고 경치를 감상하게 된다. 보통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여기서는 특이하게 히비스커스 티 라떼를 주문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지하라서 조금 답답한 점만 빼면 맛도 좋고 뷰도 좋았던 곳.
5. 하남 덕풍 하우스플랜트
옛 가구 공장을 개조한 곳으로, 시내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교외 카페 특유의 엄청난 공간감을 자랑한다. 과거 공장 시절에 만든 가구를 여기 그대로 둔 건가 싶을 정도로 빈티지한 테이블, 의자, 가구, 소품들이 자유분방하게 배치되어 있어 신기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 나오는 가구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험, 꽤 매력적이지 않은지.
6. 삼전 베리에이션
테이블이 세 개뿐인 아주 작은 카페. 'variation'이라는 이름처럼 각자 취향에 맞게 우유나 시럽을 선택하여 주문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두유, 오트 밀크, 아몬드 밀크 같은 대체 옵션이 있어 이왕이면 다른 곳에서 흔히 맛보지 못하는 라떼를 즐겨보면 좋겠다. 직접 구운 스콘과 브라우니 등 디저트 메뉴도 괜찮은 편.
7. 성수 로우포레스트
카페 투어 권태기의 정점을 찍었을 때, 미리 알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가며 보다가 들어가 본 유일한 카페였다. 그만큼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는 얘기. 날이 쌀쌀해져서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창을 전면 개방하여 탁 트인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안에 있지만 밖에 있는 것 같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다. 음료 맛은 무난했던 것으로 기억.
8. 삼청 슬로우포레스트
정갈한 화이트&우드 인테리어와 멋진 한옥 뷰가 이루어내는 은은한 조화가 매력적이다. 환경을 생각해 대나무 빨대와 생분해 빨대 중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고. 수익금의 일부는 유기동물 보호를 위해 쓰이는 만큼, 반려동물과 함께 온 손님에게도 친절한 펫 프렌들리 공간이다. 인간 손님뿐만 아니라 환경과 생물에게도 친절한 이런 카페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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