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리터 Jul 22. 2018

교토에서 마신 11개의 카페

2018년 5월 교토 여행 中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여행 중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위켄더스 커피 

(Weekenders Coffee Tominokoji) 


살다 살다 이런 데 있는 카페는 처음 봤다. 구글맵을 보며 찾아가면서도 공영주차장 저 안쪽 구석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작은 커피바에는 커피 제조하는 공간과 카운터 정도만 있을 뿐,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밖에 있는 2인용 벤치가 전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여기 찾느라 진이 빠져서 아이스 드립 한 잔을 시키고 주차장 안전바에 걸터앉았다. 


차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다소 생뚱맞은 광경을 보며 커피를 음미하니 그제야 이 공간이 납득이 되기 시작했달까. 달리던 차들이 주차장에서 잠시 시동을 끈 채 쉬어가는 것처럼, 열심히 달리던 우리도 잠시 템포를 늦추고 충전을 해가는 곳이 바로 여기 아닐까. 다 마시고 나오면서는 이름과 참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중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하루 중의 주말은 여기 위켄더스 커피에서 커피를 마시는 10분 남짓의 휴식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2. 니조코야 

(二条小屋, Nijokoya)


무언가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를 만나면, 특유의 포스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니조코야는 내가 가본 커피 플레이스 중 가장 강력한 '고수의 포스'를 풍기는 곳이다. 


겉보기에는 폐가가 아닌가 의심되는 작고 낡은 건물, 들어서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어둡고 축축하긴 한데, 잔잔한 음악과 사장님의 친절 덕분에 따뜻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라 따뜻한 커피가 간절했다. 간단한 영어로 원두 추천을 부탁하니, 내 앞에 잔을 세팅해주시고 즉석에서 드립을 내려주시더라. 무림의 커피 고수 아지트에 찾아가 정성 들인 커피 한 잔을 영광스럽게도 대접받는 기분. 비단 교토에서 뿐 아니라 인생 통틀어서 잊을 수 없는 커피 경험이었다. 




3. 스마트 커피 

(Smart Coffee, スマート珈琲店)


방문 목적은 오직 하나, 여기 프렌치토스트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프렌치토스트가 맛없기도 힘들지만, 엄~청나게 맛있기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시럽을 끼얹고 한입 크기로 썰었을 땐 쭉- 늘어나는 게 꼭 인절미 같고, 입에 넣었을 땐 씹기도 전에 녹아내리는 게 꼭 솜사탕 같았다. 빵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알아내고 싶어서 화가 나는 맛. 세트로 같이 나온 커피가 (내 기준) 사약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쓴 편인데, 달달한 메뉴에 곁들이니 느끼함을 잡아줘서 밸런스가 맞는다. 


촌스러움과 클래식한 멋의 경계에 있는 일본 옛날 다방 깃사텐 분위기를 느껴보기에도 제격. 신문 읽으며 모닝 코히 한잔 하시는 할아버지 옆에서 'JMT'를 외치며 인스타용 인증샷 찍는 젊은 한국인 관광객들, 흥미롭다. 




4. 아라비카 교토 아라시야마 

(アラビカ京都 嵐山, % Arabica Kyoto Arashiyama)


아마 해시태그 '#교토카페'의 지분율 1위가 아닐까 싶은 아라비카 교토, 한국인들에게는 '응커피'라는 귀여운 별칭으로도 통한다. 아라시야마 가서 이 커피 안 마셔본 사람은 거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 워낙 핫하다 보니 손님들도 기계처럼 줄 서서, 기계처럼 주문하고, 일하시는 분들도 기계처럼 주문받고, 기계처럼 샷 내리고, 기계처럼 대기번호를 부르고..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모두 힘들어 보여 이상하게 조금 짠한 마음까지 들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줄 서서 먹어볼 만한 곳. 이보다 맛있는 아이스 라떼는 어딘가에 있을지언정, 아라시야마에서 아라비카 교토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가게도, 컵도, 풍경도 너무 예쁘다. 브랜딩과 브랜치 운영을 참 잘한 케이스. 



5. 스타더스트 (Stardust) 


머릿속의 지도와 마음속의 시간표대로 척척 움직이는 프로 여행자도, 비가 오면 어딘가 고장 난 기분. 이 날도 그랬다. 내 상태가 고장 나서 버스를 잘못 타고, 이상한 동네에 내리고, 휴무인 카페 앞을 서성이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교토에서 가장 조용한 골목에 있는 신비로운 가게. 밖에서 고생하다 굴러들어 온 우주먼지를 꼭 안아주는 느낌. 나무로 된 집과 가구,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녹색 풀은 참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with the singing green stars as our guide' 벽에 붙어 있던 문장을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며, 혼자 멍 때리기 좋았던 곳. 편집샵과 함께 운영 중이니 소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아이스 녹차 한 잔에 7~800엔 정도 줬으니 음료 가격대는 꽤 높은 편. 



6. 아카츠키 커피 

(アカツキコーヒー, Akatsuki Coffee) 


귀여운 걸 좋아하는데 애교를 부린다거나 일부러 귀여운 척하는 건 보기 불편하다. 아마도 나는 노력형 귀여움보다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귀여움에 반응하는 편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츠키 커피는 '본투비 카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굳이 예쁜 소품으로 치장한 것도 아니고, 사장님들이 엄청 살갑게 친절하신 것도 아닌데, 그냥 막 귀여움이 흘러넘친다. 밖에 아카츠키 커피도 아니고 그냥 COFFEE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놓은 것도 귀여워.. 나 같은 여행자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노트북 반입 금지인 것도 귀여워.. 당근케이크 맛도 귀여워.. 그냥 다 귀여워.. 그중 최고봉은 하늘색 벽에 쿠폰 나란히 나란히 붙여 놓은 거, 이게 뭐라고 엄청 귀여워.. 



7. 클램프 커피 사라사 

(Clamp Coffee Sarasa)  


크게 나있는 창이 신의 한 수다. 사실밖에 좁은 공터뿐이라 썩 예쁜 뷰는 아닌데, 덩굴식물을 매달아 놓으니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왠지 이곳에서는 싱그러운 맛을 찾고 싶어, 평소 잘 안 마시는 레모네이드를 시켜놓고 멍 때리고 앉아 있었다. 가게 안에 원두 로스팅하는 냄새가 가득했으니, 물론 커피맛도 훌륭했을 것. 


가게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다가와서 '커스터머 노포토'라고 주의를 줬다. 손님은 사진 찍으면 안 된다는 건가, 왜지..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다른 손님들이 사진에 나오지 않게 찍어달라는 부탁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공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었구나. 



8. 원더러스 스탠드 

(Wanderers Stand) 


이름이 강력했다. 낯선 땅에서 카페를 찾아 혼자 방황하는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이름. 분명 이런 작명 센스 뒤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을 텐데. 하필 엄청 더운 날 한참을 걷다 겨우 찾은 곳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순식간에 들이켠 것 외에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진도 외관 한 장뿐, 아 아쉽다. 


 


9. 송버드 디자인 스토어 

(Songbird Design Store) 


점심 식사 메뉴로 에그 산도와 일본식 카레를 판다. 이미 음료는 충분히 마시고 온 터라 식사로 에그 산도 하나만 주문했다. 실한 비주얼은 우선 만족! 그리고 맛은 웃음이 절로 새어나오는 맛. 그동안 먹어본 달달한 계란말이가 들어있거나, 와사비/겨자 소스로 느끼함을 잡아주는 타마고 산도들과는 다른 느낌. 정말 버터와 계란이 한몸 되어 만들어 낸 본연의 맛 그 자체였다.


하지만 버터맛이 너무 강해 혼자 네 개를 다 먹기에는 조금 벅찼다. 2명이 와서 에그 산도와 카레를 하나씩 시켜 나눠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디자인 스토어였지만 구경할 아이템이 많지 않았던 것도 약간의 아쉬움 포인트. 



10. 요지야 카페 

(よーじやカフェ 銀閣寺店, Yojiya Cafe Ginkakuji)


은각사 구경 후 철학의 길을 걷다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코스다. 교토의 로컬 화장품 브랜드 '요지야'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게이샤 얼굴을 본뜬 로고 모양의 라떼아트가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교토에서 갔던 첫 번째 카페였는데, 모든 게 너무나도 일본스러워서 '아, 내가 교토에 왔구나'를 실감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다미방에 앉아 일본식 정원을 내다보는 경험은 확실히 한 번쯤 해볼 만했다. 매장 손님 90%가 한국인이었던 건 안 비밀. 



11. 키쿠신 커피 

(菊しんコーヒー, Kikushin Coffee)


불편한데 친절한 곳, 눈치 보이는데 편한 곳. 앞서 언급한 카페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정말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라 그랬을 거다. 처음 보는 외국인인 내가 그 날의 첫 손님으로 들어서니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영어 메뉴가 없단다. "레몬 토스트, 코히 쿠다사이" 짧은 일본어로 주문을 하니 고개만 끄덕. 바로 내 눈 앞에서 정성스럽게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더라. 다 먹고 계산할 때도 계산기에 '900'이라는 숫자를 쳐서 보여줄 뿐이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눈치가 보였지만 서로를 배려했다고 믿고 싶은 곳. 향긋한 레몬 토스트, 진한 커피, 창 틈으로 쏟아지던 아침 햇살과 함께 그때 그 미묘한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글맵에 검색하니 나오지 않는다. 혹여나 그 사이에 문 닫은 건 아닐까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교토에서 마신 11개의 카페' 끝. 





개별 사진의 무단 공유 및 불법 도용을 금합니다.

#jc_카페투어 for more



매거진의 이전글 6월에 마신 14개의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