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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ug 11. 2018

7월에 마신 11개의 카페

을지로-미아-북촌-성내-한남-성신여대-수유-공릉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을지로 평균율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곳. 이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들에 세월이 느껴졌고, 멋스러웠다. 특히 벽에 빼곡히 차있는 LP와 콘솔이 유난히 반가웠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교내 방송국 오디오 PD로 지낸 나에게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 같은 존재였다. 콘솔을 올리고, 내리고, 돌리는 맛을 알아서 더 손이 근질근질했다. 직접 장비를 다룰 수는 없지만 옛날 다방처럼 쪽지에 신청곡을 써서 낼 수도 있는 듯해 보였다. 


다음에는 저녁 시간에 와서 칵테일을 마시며 재즈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 



2. 을지로 백두강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힙한 (=낡고 더럽고 멋진) 을지로 중에서도 극강의 하드코어다. 국민학교 교장실에나 걸려있을 법한 백두산 천지 그림에, 응팔에서나 봤던 옛날 다방 의자, 그리고 어두컴컴해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안쪽 좌석까지. 옆 테이블에서는 "마약 소굴 같아"라는 소리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이곳에 어울려 보이는 유일한 사람은 멋진 여자 사장님 뿐이었으니. 


조금 긴장을 풀어보면 이 분위기가 나름 은근히 멋있고, 푹 꺼지는 소파 때문인지 편하다고 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그 짧은 시간에도 멋있다가 무섭다가 편하다가 싸하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여러모로 문화충격 대잔치였던 공간. 호불호 갈릴 수 있으니 참고. 나는 호! 였지만 나까짓게 호라고 말해도 될까 소심 해지는 곳. 



3. 미아 카페어니언 미아점


카페와 갤러리 그 사이 어딘가의 분위기. 미아의 낡은 서울 강북우체국 건물을 카페로 개조해 신비로운 느낌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불투명한 창으로 비치는 푸른 나무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기 좋다. 비가 내리고 사람이 많이 없는 타이밍에 가면 더욱 좋다. 다양한 라인업의 베이커리에 합리적인 가격의 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빛으로 채우고 해가 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나무가 숨 쉬는 모습을 관망하게 하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풍경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의 영감이 되는, 그러한 공간이기를 바란다." -Fabrikr

 


4. 북촌 물나무다방


사람 많은 게 싫은 사람과 조용한 곳을 찾는 사람이 한적한 계동을 걷다 목을 축이러 들어간 곳.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해가 저무는 계동 골목을 감상할 수 있었고, 음악이나 대화 소리 대신 무성영화가 분위기를 채워줬다. 특유의 낭만이 느껴지던 곳. 


개인적으로는 유일한 주류 메뉴가 그 많은 맥주 중에서도 하필 '크롬바커' 였던 게 치임 포인트. 역시 멋있어.. 



5. 성내동 카쿠


샌드위치가 맛있대서 점심 한 끼를 때우러 찾아간 곳. 익숙한 재료로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샌드위치에 치고 올라오는 유자청 비슷한 소스가 킥이었다. 물론 양에는 차지 않아 하나쯤 더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소박하고 편안한 작은 동네 카페인데, 왠지 모르게 예술가의 터치가 묻어나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카페에서 쓰기에는 자칫 과감할 수 있는 진한 파란색으로 한쪽 벽면이 칠해져 있어 그렇게 느꼈나 보다. 좁은 공간을 미로처럼 200% 활용한 좌석 배치도 그렇다. 예사롭지 않은 곳임에는 분명하다. 



6. 한남동 아러바우트


대문에 삐뚤빼뚤한 테이프로 붙어있는 '커피집' 글씨에 꽂혔었다. 거의 판잣집 분위기 나는 리얼 빈티지를 기대하고 갔으나, 생각보다(?) 럭셔리해서 당황스러웠던 건 안 비밀. 역시 한남동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빈티지를 추구하는 곳이라 좌석이 복작복작하고, 불편한 건 감수해야 할 듯싶다.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 밥 먹고 잠깐 앉아 수다 떨기에 더 적합한 곳. 양 옆 테이블 대화 TMI 너무 많이 들어서 피곤했다. 

 


7. 성신여대 원오프카페


'토마토 바질 에이드'라는 게 대체 무슨 맛일까, 너무 궁금해서 호기심에 찾아간 카페. 어렸을 때 호불호 갑인 토마토마 아이스크림이 액체가 됐다고 설명해도 괜찮을까. 그보다는 목 넘김이 좋고, 중간에 바질향이 올라오면서 향긋한 풍미까지 느껴진다. 다른 곳에서는 흔히 맛볼 수 없는 메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딱 '여대 앞 카페' 느낌으로 깔끔해서 딱 요즘 인기 있을 스타일이다. 카페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무난히 만족할 것. 

 


8. 성신여대 리이케커피


카페가 커피 맛있고, 분위기 좋으면 됐지 서비스를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사장님이 친절하셔서 좋았어요~', '불친절해서 두 번 다시는 안 가요 여러분도 가지 마세요' 등의 리뷰는 나에게 영향을 거의 주지 못한다. 


리이케커피는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드립으로만 커피를 내려준다. 때문에 직접 원두를 선택해야 하는데, 잘 몰라도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훌륭한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마침 까눌레가 유명한 옆 동네 카페 사장님께서 놀러 오셨다고 까눌레 하나를 서비스로 주셨다.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혼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게 민망해 그만 일어나려고 준비를 하는데, 아까 고민했던 다른 원두로 내린 커피도 조금 더 맛볼 수 있게 준비해주셨다. 


아이고.. 이런 친절을 받아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약간 황송한 기분에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지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았다. 서비스를 주셔서라기 보다는 혼자 온 손님도 배려해주시고, 더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친절, 많은 생각이 드는 카페였다. 



9. 수유 칠복상회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라는 평을 봤는데, 음.. 우리 할머니가 엄청난 멋쟁이셨으면 가능할 법한 분위기다. 정겨운 아날로그에 힙 두 스푼 정도를 섞었다. 학교 다녀오면 할머니가 해주실 법한 계란 샌드위치가 그럴 듯 해 보이는 타마마요산도가 되지 않았나!


매장 실내 전반의 가구와 그릇 등은 갈색으로 통일감을 주고, 브랜드를 나타내야 할 부분에는 짙은 녹색을 써서 포인트를 줬다. 매장 안팎으로 의외로 뛰어난 통일감을 보여줘서 정말 뜻밖이지만 브랜딩의 중요성을 깨달은 카페. 



10. 공릉동 쉬르


공릉동을 지켜봐 온 옆동네 사람으로서 경춘선 숲길 일대, 일명 '공트럴파크' 상권이 언제 이렇게까지 발전했나 싶다. 쉬르의 포토스팟인 야외 좌석을 보면 나 같은 사진포비아 조차도 한 번쯤 인증샷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사실상 동네 빌라 반지하 입구 앞마당인데, 외국 휴양지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을 내다니..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센스에 박수.


하필 세상에서 제일 더운 날 가서 고생했다. 실내는 너무 좁아서 한 팀이 앉아 있으면 그 옆에 끼어 앉기 살짝 민망할 정도. 야외에 앉아 선풍기를 코앞에 돌려주셨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에이드 메뉴에 돈을 좀 추가하면 브랜디를 넣어서 칵테일로 만들어주신다. 체리에이드(인 척하는) 체리칵테일을 마실 수 있어 행복했다. 술 최고..



11. 공릉동 카페쉔


1년 만에 다시 찾은 쉔. 작년에 왔을 때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디저트류가 너무 맛있어 놀란 기억이 있다. 오늘 준비된 베이커리 메뉴를 여쭤봤는데 블루베리 치즈 파이라고 해서 사실 조금 고민했다. 조리된 베리류를 별로 안 좋아하고, 파이도 즐기지 않는 사람.. 그래도 작년의 그 기억을 믿고 주문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5분도 채 안 돼서 카톡으로 너무 화나는 소식을 접해 눈앞이 캄캄해졌는데, 손에 파이가 집혔다. 입에 넣고 보니 맛있다, 괜찮다, 안정이 됐다. 파이가 사람을 하나 살렸다. 믿고 먹는 쉔 디저트. 


1년 전 사진을 보니 휑할 정도로 흰색 바탕 가득했는데, 복작복작 뭔가 많이 생겼다. 앞으로는 이 공간을 또 어떻게 채워나가실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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