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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Sep 09. 2018

8월에 마신 12개의 카페

전주 - 성북 - 고성 - 양양 - 망원 - 중랑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전주 포티파이브커피


어쩌다 보니 전주에 와있었다. 특별히 관광에 흥미는 없었고 카페나 몇 개 가봐야지 싶었는데, 그중에서도 포티파이브커피를 첫 카페로 선택한 건 순전히 저 당근케이크의 비주얼 때문이었다.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저 뽀짝이를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맛있었지만 눈코입 부분 프로스팅을 떼어먹을 땐 사실 조금 소름 돋았다.)


카페 1층은 하얗고 트렌디한데, 2층은 까맣고 클래식한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긴다. 꽤 좋아 보이는 스피커에서 옛날 미국 남부 스타일의 재즈가 흘러나오고, LP와 포스터가 진열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창밖으로 한옥 구조물이 내다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재즈와 한옥이라.



2. 전주 노트릭


일명 '객리단길'이라 불리는 전주의 핫플레이스 객사 뒷길은 희한하게 교토 가와라마치 일대 느낌이 났다. 지붕이 있는 아케이드가 쫙 펼쳐진 번화가는 국내에서 처음 봤다. (서울 촌사람)


그 끝자락에서 코너를 돌면 나타나는 카페, 노트릭 커피는 한옥과 일본식 가옥 그 사이 어디쯤의 모양이었다. 내가 밤에 갔기 때문에 유독 차분한 느낌이었는데, 햇살이 비치는 낮에 가면 따뜻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상상하며.



3. 전주 전망


말 그대로 '이름값' 하는 곳. 전주 한옥마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카페다. 5층밖에 안 되는데 뭐가 보이긴 할까 싶었지만 여기는 도심 속이 아닌, 1층짜리 한옥만 가득한 마을이었다. 새삼 5층이 이렇게 높은 곳이었구나 잠시나마 멍 때리며 저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전망대 역할을 하다 보니 커피 가격은 조금 있는 편이고, 인테리어는 약간 어르신들 동네 사랑방 스타일.



4. 전주 브리꼴라주


엄청 크고, 힙하고, 구역마다 컨셉이 다르고, 볼거리가 많은, 분명 공장이나 목욕탕을 개조했음에 틀림없는 이곳. 낯선 도시에 있는 카페 치고 낯선 감이 1도 없었는데, 성수동 어니언인 줄 알았다는 댓글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느낌이 정말 비슷하다.


한 가지 어니언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카페에 머물렀던 한 시간 남짓한 시간 사이에 '브리꼴라주'라는 브랜드가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다는 점. 간판에도, 테이블에도, 포토스폿 장식에도 곳곳에 다홍색 글씨와 얼굴 그림 로고가 박혀있다. 심지어 내가 주문한 아인슈페너에도 캐릭터 얼굴이 웃고 있어, 잔을 비울 때까지 나와 눈을 마주친다. 잊지 못할 얼굴.



5. 성북구 동소문동 밀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어느 날, 한적한 곳에서 차를 마셔보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안 어울리게 로맨틱한 이름의 차를 시켜봤다. '한 여름밤의 꿈'. 역시 나는 차를 즐길 줄 모른다. 녹아버릴까 봐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차와 함께 나온 모나카 아이스크림이 엄청 맛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공간은 꽤 분위기 있었다. 아주 작은 마당이지만 이렇게 집 한가운데 나만의 야외 공간이 있는 곳에 사는 건 어떨까 싶었다. 온전히 나에게만 내리쬐는 햇살과 나만을 위해 불어오는 바람.


여담이지만 아이폰 X로 바꾸고 처음 찍은 카페 사진, 인물 모드가 그저 신기했나 보다.



6. 고성 글라스하우스


엄마 아빠 모시고 이런 힙플에 가도 되나 싶었지만, 내가 (비싼) 커피 사겠다고 강행한 힙스터들의 성지. 낯설어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두 분 다 의외의 포인트에서 재미를 찾으셨다. 엄마는 인테리어에 관심을 보이시더니 여기 의자가 세련됐다며 쇼핑 검색으로 모델명까지 알아보시더라. 아빠는 커피맛과 음악이 만족스러우셨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원에게 어떤 원두를 쓰냐, 트는 노래는 어떤 장르냐 물어보고 오셨다는.


그저 사진 찍어 SNS에 올리려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능동적으로 이 공간의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라 느껴졌다. 엄마 아빠에게 이 낯설고 시끄럽고 자유분방한 컨테이너 박스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멋있고 궁금하고, 더 일찍 알지 못해 아쉬운 세계였을까.



7. 양양 닌베


요즘 가장 핫한 유튜브 예능 '와썹맨'에서 박준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빙수라고 적극 추천했던 곳. 기억해두었다 가족들과 함께 찾아갔다. '빙수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했는데 얼음만 한 입 떠먹고 눈이 땡글 해졌다. 엥? 녹아 사라져 버렸어요! 부드럽고 달콤한데 얼음의 까끌까끌한 질감이 살아있어 정말 새하얀 눈을 먹는 느낌이었다. 최근에 먹어본 빙수 중 가장 맛있었던 건 확실!



8. 망원동 미아논나


샌드위치 맛집으로 유명한 곳. 카페에서 먹는 간편한 음식이라기보다는 점심 식사 한 끼의 맛에 가까웠다. 누가 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블로그에서 '서울 3대 샌드위치'라는 말도 봤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르겠다. (가격 대비..)


목 막힐 것 같아 병맥을 하나 주문했는데 'Birra Moretti'라는 이 맥주를 처음 봤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 맥주는 Peroni가 전부라 밍밍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요거 괜찮다. 맛있는 맥주를 하나 알아간 뜻밖의 수확.



9. 망원동 커피가게 동경


그 유명한 아인슈페너 맛집 '커피가게 동경'. 1시 오픈이라길래 12시 50분쯤 갔더니 이미 내 앞에 열댓 명 정도 줄 서 있었다. 20대 대학생 친구들부터 어머님들 연배까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우르르 줄 서서 입장하는 카페는 처음이라 놀랐다.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만드시는 과정을 눈 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한 잔 한 잔 허투루 내지 않는 정성이 느껴졌다. 날이 좀 더 추워지면 와서 드립 커피와 따뜻한 아인슈페너를 마셔봐야겠다는 생각.


매장이 지하라 어두컴컴한데 이 배경마저도 커피와 조화를 이룬다. 세월이 느껴지는 CD와 레코드판, 책과 조명이 모두 어우러져 아인슈페너를 닮은 최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너무 인기 많은 맛집이라 여유롭게 즐길 수는 없지만, 임팩트가 강했던 곳.



10. 망원동 M1CT


M1CT가 망원시티인 걸 깨달았을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브랜드를 좋아한다. 세월이 느껴지는 망원동 골목 일대의 분위기에서 다소 튀어 보일 수 있는 '쌔삥의 간지'였지만 그마저도 힙했다. #로컬스웩


커피와 함께 주는 주문서(?) 영수증과, 블랙 앤 화이트 스티커를 챙겨 왔다. M1CT의 힙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종이 쪼가리들, 너무 좋다.



11. 중화동 육공사


또 왔다. 아마도 네 번째 방문. 그릴드치즈와 아보카도 토스트가 참 맛있는 곳이라 신메뉴 '쉬림프번'은 어떨까 궁금해서 와봤다. 먹어본 소감은 사진을 보고 예상했던 맛 그 자체였다는 것, 생각보다 조금 매콤했던 것 정도 빼고. 단, 먹기 불편해서 못생겨질 수 있으니 신경 쓰이는 사람 앞에서는 주의할 것.


이전에도 컵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유독 이번에 컵에 제대로 꽂혔다. 크로우캐년 특유의 무늬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도 냉기가 오랫동안 보존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고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기 커피 참 잘 한다.



12. 신내동 개인공간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늘 갈망한다. 사장님의 공방 작업실을 겸하는 이 카페는 이름 때문인지 더 프라이빗한 느낌을 준다. 음료값을 지불하고 카페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나에게도 허락된 영역 같았다. 비록 혼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앉은자리에서 조용히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만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카페 소개에 ceramic workroom이라고 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공간에서 어떤 작품을 만드시는지도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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