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리터 Nov 02. 2018

베를린에서 마신 12개의 카페

2016년 6월, 2018년 9월 여행 中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여행 중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Roamers


이곳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2016년 여름에 처음 갔을 땐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힙의 끝판왕. 당시만 해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플랜테리어와,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아 먹기에 아까운 카페 플레이팅이 흔하지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또 어땠는가. 서빙하는 언니는 너무 더웠는지 상의 대신 앞치마만 입고 주문을 받았고, 자리 한편에는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애정을 표현하는 두 쌍의 언니 손님들..이 계셨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분위기.


그 사이에 실내에 식물이 주렁주렁 매달린 장식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서울의 모 카페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와 플레이팅을 대놓고 카피해서 논란이 됐던 해프닝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2018년 가을에 다시 갔을 땐 오픈 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웨이팅이 몇 팀 있었고, 사람이 많아 거의 몸이 반 접힌 채 식사했으며, 나를 제외하고 한국인이 두 팀 더 있었다. 어쩐지 그때의 그 자유분방함은 사라진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겠지..


그래도 처음 갔을 때 언제 이런 곳에 또 와볼지 모르니 온 오감을 다 써서 기억해두려 했다고 남겼는데, 너무 늦지 않게 2년 후에 진짜 다시 가보다니, '이 정도면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삶이네' 라며 혼자 만족했던 아침. seasonal sunny side up과 당근케이크는 무조건 추천.



2. The Barn Roastery


이름 그대로 헛간 같은 곳. 가게 안쪽에서는 커피 원두를 포대로 쌓아놓고 거대한 소음과 함께 로스팅 작업이 한창이고, 바깥쪽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커피를 서빙한다. 베이커리 메뉴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 한번 아쉽게 포기했던 곳, 두 번째 방문 때 아침 첫 손님으로 입장해 당당히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여기 포르투갈 아니고 홍콩도 아닌데 에그타르트가 이렇게까지 맛있는 건 좀 barn칙 아닐까 싶었다. 이 집 베이커리 참 잘하네. 바로 옆에서 장인의 손길로 로스팅을 하고 있으니 커피 맛은 말할 것도 없고.


다만, 기계 소음이 좀 심한 편이니 오래 앉아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맛있는 커피와 베이커리를 잠깐 즐기고 갈 목적으로 더 추천.



3. Bonanza Coffee


죽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세계 25대 카페, 유럽 5대 카페로 선정된 곳이라고 듣고 베를린 처음 갔을 때 가장 기대했던 카페. 외관은 이미 잡지와 SNS에서 숱하게 본 파란 벽에 네온사인. 그런데 그 아래 작은 하얀 간판에 시선이 갔다. 'Don't die before trying.' 보통 죽기 전에 도전해보라고들 하는데 여기는 도전하기 전에 죽지 말라고 한다. 다 해보려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지.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한남동의 보난자가 간지 나지만 불편하다면, 베를린 원조 보난자는 화려한 장식 없이 정말 로컬들의 편안한 아지트 느낌. 햇살 좋은 여름에는 모두가 야외 벤치에 걸터앉아, 안에서는 나 혼자 아이스 플랫화이트 한 잔에 잡지 몇 권을 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던 기억.



4. Distrikt Coffee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갔던 카페이기도 했고, 주말 아침 브런치 타임에 가서 더더욱 '이게 베를린의 여유구나'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은 곳. 사실 다른 카페들을 경험하고 나서 보니, 디스트릭트 커피는 아주 특별할 건 없지만 누가 와도 실패하지 않을 만한 편하고 무난한 카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메뉴 선택에 실패해 결국 토핑은 다 남기고 울며 퍽퍽한 빵만 씹어먹었다는 슬픈 이야기..)


여담이지만, 인스타그램 1~2년 전 사진에 계속 좋아요가 눌려서 신기했던 곳. 최근 들어 한국에 잘 알려진 베를린 카페 중 하나가 된 듯하다.



5. House of Small Wonder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예쁜 나선형 계단으로 유명한 곳.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일본인 힙스터 언니 오빠들이 맞이해준다. 주렁주렁 식물에 꽃무늬와 레이스. 어찌 보면 베를린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투머치예쁨인데, 낡고 칙칙하고 더러운데 멋있는 힙만 보다가 이런 걸 보니 또 반갑다.


맛은 또 어떠한가, 버터+메이플 시럽+생크림 크로와상 프렌치토스트 한 입에 귀에 종소리 들리는 기분. 오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자리가 다 찼을 정도로 현지인에게도 인기인 브런치 플레이스임에 분명하다. 미떼 부근에서 푸릇푸릇한 아침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여기로.



6. Kauf Dich Glücklich Cafe & Mehr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을 사 가세요' 소품부터 가구까지, 이곳에 있는 모든 걸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의자도 하나 똑같은 게 없다. 하나의 쇼룸 안에서 먹고 마시고 멍 때리고 수다 떠는 일련의 카페 경험을 하는 격이다.


그렇다고 이케아의 카페 버전 같은 건 아니다. 이곳의 컨셉은 자본주의가 아닌, 소소한 소비가 주는 행복에 가깝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웃음 짓게 하는 그런 것들. 이를테면 '천국에 아이스크림 없으면 나는 안 갈래'라는 테이크아웃 컵 문구처럼. 행복은 이렇게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소소하고 귀여운 것이었다.



7. Luzia


밤에는 술 먹고 춤추고, 주말 밤에는 클럽 가기 전 베를린 힙스터들의 아지트라는 Kreuzberg 카페 겸 바. 쫄보라 아무도 없는 대낮에 첫 손님으로 입장해 혼술했다. 밤이 되면 이 공간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며.


베를린 온 김에 이름에 'Berliner' 들어가는 술은 다 먹어보고 싶어서 Berliner Sommer 주문. 우리가 아는 달달한 체리맛이긴 한데 도수가 꽤 느껴져서 온 더 락은 필수. 아무도 없는 힙한 카페에서 혼자 취하다니 창피하지만 신났다.



8. Cafe am Neunen See


베를린 도심 속 대규모 공원인 티어가르텐 호숫가에 있는 카페 암노이엔제.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니, 복 받은 베를리너들. 실제로 카페 앞 호숫가에 보트와 비치베드, 야외 테이블이 쭉 줄지어있다. 가을이라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서빙이 안 되는지, 아쉽게도 호숫가에서 먹는 이는 없었다. 음료 전문 카페가 아님에도 내가 시킨 차이라떼는 상당히 맛있었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종업원이 많지 않아서 다 마시고 계산하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 카페에서 조차 계산할 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종업원을 기다려야만 하는 유럽 문화는 아직도 적응하기 어렵다.



9. Westberlin


이곳은 스스로를 '커피바 & 미디어샵'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커피와 잡지를 판다는 거다. 서점 못지않게 꽤 많은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기 좋다. 어쩌면 책보다도 잡지는 지금 이 시대의, 이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다. 독어를 읽을 줄은 몰라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냥 슥슥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가 와있는 베를린에서는 이런 곳이고, 이런 화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구나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카페 자체의 규모도 커서 아침에 각자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을 한다거나, 신문·잡지를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였다. 베를린에서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도 꽤 유명한 'Five Elephant'에서 치즈케이크를 공수해온다니, 여기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즐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10. Michelberger Hotel


책을 테마로 하는 곳은 늘 멋있다. 인테리어 소재로 이렇게나 잘 활용하는 곳은 더 멋있다. 분리벽 역할을 하는 책장은 물론, 테이블 받침과 조명에까지 책을 이용했다. 물론 이 책들을 꺼내서 볼 수 있는 건지는 확인을 못해봤지만. 여기 로비 사진 한 장에 반해, 비싸서 숙박은 못해도 근처 지나가다 로비 카페에 잠깐 들렀다. 투숙객이 아닌 카페 이용객에게도 매우 친절해서 기억에 남는 곳. 개인적으로 화장실 표지판 대신 여자화장실엔 스파이스 걸스 앨범이, 남자화장실엔 보이즈 투맨 앨범이 걸려있는 센스가 인상적이기도 했다.



11. Populus Coffee


두 번째 숙소 바로 옆에 있던 작은 동네 카페. 근처에 머물지 않았더라면 아마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곳이었겠지. 노이쾰른이라는 동네가 왠지 모르게 칙칙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 카페 내부만큼은 에메랄드 컬러 덕분인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노이쾰른에서 안락함을 찾고 싶다면 잠깐 들러 따뜻한 커피 한잔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12. Zeit Fur Brot


영어로는 'Time for Bread', 베를린뿐 아니라 타 도시에도 여러 개 지점이 있는 독일의 베이커리. 이름도, 간판도, 빵도 정말 독일답게 무심한 듯 시크하다. 개인적으로 딱딱 퍽퍽한 독일식 빵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독일에 왔으면 한 번쯤 경험해보면 좋은 독일식 아침.


참새 세 마리가 들어와 내 옆에 떨어진 빵가루를 쪼아 먹으며, 나와 함께 아침식사를 했던 장면이 생각난다. 한국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독일 참새는 Zeit Fur Brot을 그냥 지나칠 수 없나 보다.






개별 사진의 무단 공유 및 불법 도용을 금합니다.

#jc_카페투어 for more

매거진의 이전글 9월에 마신 7개의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