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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r 18. 2019

25살, 거짓말처럼 인생에서 시험이라는 게 사라졌다

100일 글쓰기 #시험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새해를 맞아 갑자기 영어 점수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대뜸 OPIC을 신청하고 바로 3일 후에 시험을 치러갔다. 충동 소비는 해봤어도 '충동 응시'는 처음이다. 


막상 시험 당일이 되니 왜 내 손으로 이런 일을 벌였지 후회가 밀려오더라. 너무 긴장돼서 손에는 식은땀이 나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였으며, 입은 지맘대로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영어를 뱉어냈다. 끝나고 시험을 망쳤다는 자책감에 심란해져 한참을 걸었다. 그 추운 날 무려 시청에서 삼각지까지 걸었으니 혼자 온갖 궁상은 다 떨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시험 보느라 수고했다며 저녁을 차려주시는 엄마를 보니 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는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다. 생각해보니 시험이라는 걸 4년 만에 본 거다. 짜인 틀 안에서 고작 문제 몇 개로 숫자와 등급으로 나를 평가하는 이 시스템이 낯설 만도 했다. 


24살까지의 내 인생은 지긋지긋한 시험의 연속이었다. 유별나게도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매달 국수사과 주요 과목에 대해 월말고사를 치렀다. 본격적으로 전교 석차가 매겨지기 시작한 중학교 때에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는 게 중요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내신과 수능만 잘 치면 되는 줄 알았더니 각종 영어 시험, 경시대회, 글짓기 대회 등 수시 보험으로 들어놔야 할 시험이 또 수십 개였다. 그 수많은 시험들 끝에 펼쳐진 대학생활은 최종 골라인이 아닌 사회로 나가기 위한 시험을 응시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고. 


그리고 25살이 되던 해에 가장 혹독하고 고되게 치른 시험을 통과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인생에서 시험이라는 게 사라졌다. 행복했다. 드디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시험 때문에 밤새고 맘 졸이는 일이 없어도 된다. 


그러나 그 해방감은의 유효기간은 딱 3년 정도였다. 직장인 4년 차로 업무에는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내 삶에서 일을 빼고 본다면 나머지 모든 면에서는 제자리걸음, 아니 오히려 후퇴를 하고 있음을 뼈 저리게 느낀 나의 28살, 작년 한 해였다. 업무 외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삶의 방향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허무하고 허탈했다. 




4년 만에 다시 시험을 보면서야 느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시험은 필요한 것 같다. 내 인생에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원대한 꿈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비슷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단기적인 목표를 중간중간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하나하나 이뤄가고 성취감을 맛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내 삶이 허무하다고 느낄 틈이 없을 테니.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망쳤다고 자책했던 두 달 전 시험에서 뜻밖에도 좋은 성적을 받았다. 이게 뭐라고 또 금세 기분이 좋아지더라. 이런 일 벌이기 잘했다 싶고. 그래서 올해 초 OPIC을 시작으로, 몇 번 더 '충동 응시'를 질러볼 셈이다. 꼭 응시료를 내고 성적표를 받는 시험이 아니어도 좋다. 이루고자 하는 단기적인 목표 앞에 나를 던져놓고,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달콤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면 된다.  


지금 시작하는 '100일 동안 매일매일 글쓰기' 프로젝트도 그런 마음으로 임한다. 나 혼자만의 시험이다. 99일 후, 그간 쌓아온 100개의 글과 100개의 출석표를 보며 '또 하나 해냈구나' 하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그렇게 내가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를.


그날 시험장 앞에 미술관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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