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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r 22. 2019

백예린의 노래가 내 삶에 미친 영향

100일 글쓰기 #노래

좋은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 목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일종의 동경, 대리만족 같은 걸 수도 있겠다. 노래도 목소리가 좋은 가수들 위주로 찾아 듣는 편이다.


2012년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목소리를 접하고 귀가 정화되는 기분이 드는데. 바로 'I Dream'이라는 노래로 데뷔한 듀엣 15&의 백예린이었다. 디즈니 공주가 한국 가요를 부른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음색. 심지어 노래를 잘하기까지 해. 이건 사기다 싶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홀린 듯이 백예린이 부른 모든 노래를 다 찾아 듣기 시작했던 게. 




백예린의 이름으로 발매한 곡은 2개의 EP와 2개의 싱글이 전부지만, 15& 시절 앨범과 라디오에서 부른 커버 라이브,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려주는 각종 커버곡들, 공연에서만 들려준 미공개곡들까지, 꽤나 알찬 플레이리스트를 꾸릴 만한 정도는 된다. 발매 형태도, 언어도, 장르도 다양한 만큼, 그때그때 분위기와 상황에 딱 맞는 노래를 골라 트는 재미가 있다. 


기분 좋아지고 싶을 땐 단연 'Square'다. 맑고 쾌청한 날,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사뿐사뿐 노래하는 21살의 예린이에 빙의해보며 스퀘어 전주에 발맞춰 걸을 때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내 일상의 공기 청정기 같은 노래랄까. 사랑받고 싶은 날엔 미공개곡 'Bunny'가 생각난다. 중간에 나오는 '우우 우우우' 코러스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눈 맞추며 흥얼 거리는 상상을 해본다. 


"미지근한 사람들로 가득 채운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들어온 날은 '잠들고 싶어'를 틀어놓는다. 가사가 꼭 내 맘 같아서, 그날만큼은 조금이나마 걱정을 내려놓고 잠을 청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좀 더 큰 위로가 필요한 날엔 'Bye Bye My Blue'다. 이 노래는 특히 바다나 호수, 강가에 서서 푸르른 물을 바라보며 들으면 효과가 배가 된다. 거대하고 포근한 존재가 나를 가득 안아주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계절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찾아올 때면 무기력해지는 내게 'November Song'은 매년 11월을 기다리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일상의 작은 감정들을 어루만져주기도 하지만,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을 때도 백예린 노래는 통한다. 쿠보타 토시노부의 ‘La La La Love Song'을 들으면 집 앞 산책길도 화려한 도쿄의 밤거리로 변신하고, Lily Allen의 ‘Littlest Things'를 들으면 가벼운 소나기가 흩날리는 런던으로 순간 이동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가 많아 하나씩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무엇보다도 타이틀곡 차트 1위 올킬에, 전곡 차트인한 역대급 새 앨범 <Our Love is Great>은 앞으로 내 삶의 어떤 순간순간에 자리하게 될지도 궁금하고. 




백예린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불안하고, 상처 받고, 방황하는 여린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었고, 다들 마음 한편엔 여전히 여린 구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고 감추며 사는 법에 익숙해지다 보니 점점 잃어가는 것뿐.


지금 나는 그 과도기에 있다. 사회생활 5년 차는 더 이상 방황하거나 무너지면 안 되니까. 밖에서 온갖 씩씩하고 강한 척 다 해도, 혼자 있을 땐 본연의 어리고 여린 나로 돌아와서 쉬어가고 싶다. 그런 나의 내면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소환할 수 있는 게, 지금으로서는 백예린의 노래고.




백예린이 '인생 가수'라는 칭찬 댓글에 너무 영광이고 감동이라며 좋아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여동생 같은 아이를 내 인생 가수라고 하기엔 어쩐지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 이제 인정할 수밖에.


내 인생 가수 예린아, 예쁜 목소리로 내 20대 인생의 다채로운 bgm이 되어줘 고마워. 세상 모든 노래를 네 목소리로 듣는 날까지, 너를 응원할 한 언니팬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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