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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pr 05. 2019

데이식스가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청춘

한두 번 와보는 데이식스 콘서트도 아니고, 벌써 열다섯 번째인데 왜 이렇게 떨리고 긴장되던지. 공연장 주위를 맴돌면서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은 처음이라.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 작은 홍대 지하 클럽에서 콘서트 하던, 나만 알던 그 밴드 데이식스의 단독 공연이 맞나 싶어서.


첫 월드투어 <Youth> 앙코르 콘서트의 막이 오르고, 그 큰 공연장을 빽빽하게 가득 채운 팬클럽 마이데이의 공식밴드 불빛을 보고 울컥했다. 진짜 데이식스가 많이 컸다는 게 확 실감 나던 순간. 오프닝 첫곡 'Better Better' 떼창 파트를 목이 터져라 불렀고,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온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데이식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팀 이름 조차 없이 '밴드 연습생'으로 불릴 때였다. 'WIN'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짧게 부른 노래가 신선해 관심을 갖게 됐다. 2년 후 'Congratulations'라는 희대의 명곡으로 데뷔했는데 세상에 그 흔한 음악방송도 안 나오고, 아무런 홍보도 없길래 결국 내가 궁금해서 한번 찾아가 봤다. 2015년 11월, 홍대 무브홀에서 열린 DAY6 1st Live 'D-Day'. 그렇게 데이식스와 나의 역사가 시작됐다.


D-Day, Dream, Every Day6 February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과 하이터치까지 하고 나오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친구들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던 것 같다. 잘 만들어진 화려한 TV 스타들에 비해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뭐든 열심히 해보려는 순수한 모습에 점점 스며들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막 신입사원이 되었다. 데이식스와 나, 사회로의 데뷔 동기라고 치자. 다 큰 어른인 척했겠지만, 첫 콘서트의 데이식스만큼이나 그때의 나도 참 많이 서툴었을 테다. 지금껏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경험은 많지만, 유독 이들과는 단순한 스타-팬의 관계보다는 뭔가 더 끈끈한 게 있다고 믿어진다. 우리의 시작이 같았으니까.


Every Day6 April, July, September


“데이식스 콘서트에 오시면 살아갈 이유가 생겨요.” 제형의 말대로 그 후로 나에게 '다음 데이식스 콘서트'란 그때까지 버티고 살아가야 할 동기부여 같은 거였다. 힘든 시간과 긴 공백기를 겪고 만나 울컥했던 2nd Live 'DREAM', Every DAY6 Project의 시작을 알린 2월, 만우절 이벤트로 멤버들이 가면을 쓰고 티켓 도장을 찍어줬던 4월, 정말 머리 풀고 신나게 놀고 온 역대급 콘서트로 기억되는 7월, 전설의 'Man in a Movie' 떼창을 만들어낸 9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라 "한 해 동안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영현의 한마디에 펑펑 울며 위로받고 온 12월 공연까지.


미친 듯이 뛰어놀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공연이 끝날 무렵의 헛헛한 마음마저 짠한 감동으로 채울 수 있는 시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압축해서 느껴볼 수 있는 시간, 그게 바로 데이식스 콘서트다.


Every Day6 December, The Best Moments, You Made My Day


그렇게 3년 동안 콘서트를 하다 보니 데이식스만의 이야기를 담은 자작곡들이 많아지고, 팬들과 소통하는 우리만의 공연 문화가 생기고, 점점 공연장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더니, 어느덧 전국투어에 월드투어까지 하는 밴드가 되어있더라. 나처럼 데이식스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작은 홍대 무브홀에서 예스 24 라이브홀, 올림픽홀을 거쳐, 무려 핸드볼 경기장을 가득 채우기까지. 지난 3년 6개월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Youth Seoul, Youth Jeonju




"저희가 정말 작게 시작했잖아요" 앙코르 콘서트 공연이 끝나갈 무렵 멤버들이 한 명씩 소감을 말하는데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 무대가 처음부터 당연했던 게 아니었기에. 그들은 계속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설 수 있음을 진심으로 거듭 감사해했다.


그래서 나는 데이식스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 처음 봤을 때 '이 친구들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막 사회로 나온 내가 이제 막 가요계에 첫발을 뗀 데이식스를 만난 것. 이 빛나는 청춘의 시기를 함께 보내고 의지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난 것.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난 3년 6개월 동안 데이식스는 꽤 잘 커왔다. 지금의 나는 가수로 비유하자면 월드투어를 돌고 핸드볼 경기장 단독 공연을 할 만한 실력과 위치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 역시도 이루고자 하는 바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


내 인생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데이식스가 글라스톤베리 헤드라이너로 서는 '슈퍼밴드'가 되는 날까지 응원할 거다. 그때쯤엔 나도 슈퍼밴드 팬에 걸맞은 좀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게 목표고. "<Youth> 투어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의 youth는 끝나지 않았다"는 원필의 깜짝한 마지막 한 마디가 큰 여운을 남겼다. 데이식스의 노래를 듣고 데이식스의 공연을 가는 한, 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픈 청춘일 거다.


and finally, Youth Encore




혹시 이 글을 보고 데이식스가 궁금해지셨다면,


♬ 영업 성공률 100%, 대중들이 좋아하는 데이식스 락 발라드 5

예뻤어
Congratulations
좋아합니다
그렇더라고요
I Loved You

♬ 가장 많이 듣는 내 취향의 데이식스 노래 5

Man in a Movie
Hi Hello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놓아 놓아 놓아 (Rebooted Ver.)  
혼잣말


여러분이 즐겨 듣는 데이식스 노래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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