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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pr 07. 2019

엄마는 꽃을 참 좋아한다

100일 글쓰기 #꽃

엄마는 꽃을 참 좋아한다.  


주말에는 좀 쉬면 좋겠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는 화분을 돌보느라 시간이 다 간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길 가다가도 꽃집이 보이면 멈춰서 한참을 구경한다. 좋은 거, 비싼 거 욕심은 없으신 분이 이상하게 꽃 욕심은 많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이거 사줘, 저거 사줘 하면 아빠는 외면한다. 나나 동생은 잔소리부터 쏟아낸다. 제발 화분 말고 엄마 건강이나 좀 살피시라고.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꽃을 받아본다는 건, 엄마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몇 년 전 엄마가 꽃을 받고 행복해하시던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동네에서 소규모 강습으로 하모니카를 배우셨을 때였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쭉 일해오신 엄마가 취미를 가져본다, 무언가에 도전해본다는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 달 정도 배우고 노래를 연주하게 됐을 때쯤, 어느 교회에서 단체로 작은 공연을 하게 됐단다. 우리도 보러 가겠다고 했더니 부끄럽다고 언제 어디서 하는지 끝까지 알려주지 않고 집을 나서셨다. 


나와 아빠는 이제 엄마를 찾아내야 한다. 가는 길에 아빠가 웬일로 꽃이라도 한 송이 사가자고 하셨다. 세상 무뚝뚝하고 로맨틱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분이 어찌 그리 깜찍한 생각을 다 하셨을까. 노란 튤립 한 송이를 산 우리는 동네에 있는 모든 교회란 교회는 다 찾아다녔다. 결국 공연은 못 보고, 다 끝나고 나오는 엄마를 겨우 찾아냈다. 


아빠는 '오다 주웠다'는 투로 엄마에게 꽃을 내밀었다. 워낙 리액션이 좋은 분이라 감동이라며 크게 환호하셨지만, 엄마의 표정에서는 묘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꽃을 받아본다는 감격이었을까. 어른이 되고서 처음으로 가져본 취미와 도전에 대한 쑥스러움과 뿌듯함이었을까.  


30년을 일해오신 엄마가 드디어 내년에 퇴직하신다. 내년에는 엄마에게 꽃을 선물할 일이 많아지길 바란다.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동네 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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