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의 생활은 그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마트에 가는 것도 왕복 1시간을 훌쩍 넘는다. 병원은 너무 멀어 꿈도 꾸지 못한다. 사실 병원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아프지 않고자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어차피 세월 다 산 늙은이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동네는, 죽었으면 죽었지 애매하게 아픈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병원이 들어설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오늘로 이 촌동네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는데, 내가 잘 다니던 학교도 관두고 시골구석으로 오게 된 건 큰 까닭은 아니었다.
사실 이 동네는 나의 고향인데, 동시에 감옥 같은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 선망을 갖고 있던 어린 날의 나는, 이곳이 그저 감옥 같았다. 인천으로 전학을 간 중학교 2학년까지 말이다. 그야 또래라곤 5명뿐이고, 그마저도 전교생이 13명인 우리 학교에선 가장 학생이 많은 학년이었다. 매일을 줄넘기며 딱지치기며 5명이서 온종일 붙어 다녔고, 나름 행복했었던 것 같다. 화근이 된 것은 학교에서 간 견학이었는데, 돈도 없는 시골학교가 어쩐 일인지 서울의 놀이공원으로 견학을 보내주는 게 아닌가. 평소라면 뒷산이나 갔을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같은 학년 부잣집 재현이가 일을 벌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간 견학은 꼭 꿈나라를 쏘다니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를 탄 내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저것들은 그림보다 수준 높고 생동감 있는 건 물론이고 우람하고 각진 게 그렇게나 매력적이었다. 교과서에서 본 것보다 반짝이고 높았다. 그날부로 난 도시에 살고 싶다는 꿈이,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꿈은 무슨 아집이 따로 없다. 그날부로 내 마음 한가운데에, 도시에 살아야겠다는 아집이 생긴 것이다. 형편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우리 집은 내 아집에 못 이겨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에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런 내가 다시 돌아와 스스로 수갑을 채우게 된 것은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어서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경기도 끝자락의 대학교에 기숙생활을 했는데, 언제부턴지 논밭은 하나하나 아스팔트가 들어차고 나무는 으드드득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것이, 신록은 도망가고 퍼런 건물에 반사된 태양빛만 쬐는 게 아닌가.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동안 그 열 배는 큰 빌딩이 4그루가 들어섰다. 차라리 도시에 지내는 것이면 모를까, 한 번에 전부 바뀌는 것이면 모를까, 천천히, 하나하나 인위적으로 변해가며 과도기에 처한 그 동네가 그토록 역겨울 수가 없었다. 초가집에 흙길에 조금 남은 논밭에 아스팔트에 퍼런 창문에 공사장에, 요만큼 남겨진 신록에 저만큼 쌓여진 인조물에 조화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세상만사 모든 게 변하게 돼있으며 나에게도 사춘기는 있었다만, 굳이 그 과정을 보고파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태생이 촌놈이라 그런지 듬성듬성한 빌딩 숲은 금방 답답해져 버리고는 뻥 뚫린 논에 꼬릿한 소똥 냄새가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고향에 돌아왔다. 작은 동네는 아니지만 워낙 촌동네다보니 건너건너 전부 아는 사이인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시골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젊은이가 도시에서 학교도 때려치고 귀향을 해서인지, 동네 어르신들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어릴 적보다 더 심해진 것이, 물론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걱정되는 마음에 하시는 말씀인 건 잘 알아도, 그걸 마주칠 때마다 듣자니 고막에서 피가 날 노릇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 말이다. 어르신들께 듣자 하니 어릴 적 어울렸던 5명 중 '이설'이라는 여자애를 빼고는, 나를 포함한 4명이 이사를 갔다고 한다. 이제야 드는 생각인데, 내가 인천으로 가게 된 이유는 단순히 내 아집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늙은이의 참견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사 가지 않은 그 아이와는 아직 한 번도 인사하지 못했다. 이곳에 온 뒤로 한 달 동안, 한 번을 마주친 적이 없다. 초등학생까지는 남녀 할 것 없이 5명이 꼭 붙어 다녔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이성 간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느껴져 꽤나 서먹해졌었다. 그중엔 나를 좋아하던 '김연'이라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내게 고백하면서, 우리 5명의 관계는 끝이 났다. 나는 그 애를 전혀 좋아하질 않아서 도저히 고백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 대차게 차버려서, 그대로 다 같이 어색한 사이가 돼버렸다. 꽤나 상처가 됐을 거다. 우리는 모두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학교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더욱 마주치기 어려웠다. 어린 마음에 사랑이라는 건 당최 어려웠지만서도 짐작은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처음은 '이설'이라는 아이였다. 그 감정을 처음 짐작하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비 오는 날의 일이었다.
"혹시 우산 가져왔어?"
교실을 나서려는데 그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응, 있긴 한데."
"같이 쓰자, 우리 집까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선 인사도 잘 안 하던 사이인데, 꽤나 대담하게 나오니 당황스럽다.
"우산이 좀 작으니까 너 혼자 쓰고 가. 나는 비 맞는 거 좋아하니까···."
"헛소리 말구 같이 쓰고 가."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고 우산을 폈다. 2년 전과 달라진 건 눈높이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라벤더 비슷한 향기도 나고 묶은 머리도 많이 정갈해진 듯했다. 키 차이가 꽤 나서 정수리가 보였다. 쌍가마인 걸 그제서야 알았다.
"둘이서 하교하는 건 처음이네."
무려 5분의 침묵 끝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어색함이었다….
"그러게. 초딩 땐 끝나자마자 5명이 꼭 모였잖아. 그땐 비 오면 좋다고 맞고 갔는데."
"나는 지금도 좋다니까 그러네…."
"나랑 우산같이 쓰는 게 그렇게 싫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날 째려보며 말했다. 변한 게 없구나 싶어서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금 방 멈췄다.
"너 이사 간다며?"
깜짝 놀랐다. 부모님과 선생님 정도만 아는 사실이었다. 괜히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어르신들한테….
"어떻게 알았어?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담임이 비밀이라면서 알려줬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게 이상하다고. 나랑 친하지 않았냐면서 알려주더라. 풋.. 표정이 왜 그래?"
여기저기서 잔소리 들을 생각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뜨거워진 얼굴을 획 돌리다가, 우산에 코를 찔려버렸다.
"앗! 아…!"
"너 진짜 바보 아냐? 덜렁거리는 건 2년이 지나도 똑같네…."
그 아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난 부끄러워서 얼굴을 돌릴 수가 없었다.
"이사는 언제 가는데?"
"34일 뒤에."
"정확하네."
그 아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하품하는 척을 했다.
"그럼 34일 동안만 학교 같이 다니자. 너는 친구 없고, 나도 친구가 없으니까? 윈윈이지. 윈윈."
"거짓말은..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너가 친구가 없다고?"
"응. 없어."
그 애는 단호하게 말했다. 꽤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반박은 못했다.
"그래. 난 좋지 뭐."
큰 뜻을 담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왜인지 크게 움찔하고는 날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2년 만에 제대로 보는 얼굴이긴 하지만,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었다. 눈이 예뻤다. 힘준 듯한 입꼬리가 귀여웠다. 그새 빨개진 얼굴은 더했다. 순간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굴은 너무 뜨겁고 가슴이 멋대로 쿵쿵대는 게 들킬까 무서워 천천히 정면을 바라봤다. 부끄러워서인지, 누군가가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라벤더 향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왜 놀라고 그래. 그런 뜻 아니니까.."
당황해서 괜히 해명하듯이 말해버렸다. 그렇게 20분간 아무 얘기 않고 걸었다.
"내일 봐. 문구점 들러야 하니까 7시 20분까지는 나와. 간다. 안녕."
그 애는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총총 뛰어가버렸다. 말투가 딱딱한 게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아 괜히 뜨끔했다. 그래도 그 아이와 나는 34일을 전부 같이 등하교 했다. 딱 하루만 빼고 말이다.
같이 등하교 하면서 그 애와 꽤나 친해졌다. 나나 그 애나 친구가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엔 붙어있었다. 같은 반 애들은 너네 언제 사귀나며, 항상 놀려댔다. 역시나 그건 피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심 좋았지만서도, 그 애는 그냥 무시하라고 하곤 했다. 너무 담담하게 말하길래 좀 서운했는데, 그래서 마음이 덜 커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모레가 이사니까.. 내일이 마지막이네. 학교 오는 거지?"
".. 응. 가야지."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자. 내일은 일찍 나와. 산책하자."
그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 애와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가서, 뒷산으로 갔다. 하루 종일을 산공기나 맡다가 집에 갈 속셈이었다. 난 그 애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날 만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만 같아서 도망쳤다. 도시로 가고 싶다고 조른 건 나고, 어쩌면 그 때문에 그 애와 친해질 수 있었고 그 애를 좋아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이제 와서 가기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일 헤어져야 한다면 당장에 헤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음날 잽싸게 이삿짐을 싣고 나도 몸을 실었다. 그 애는 우리 집 위치를 정확히는 몰랐을 것이다. 알려준 적도 없고 거리가 꽤나 있어서 알 겨를이 없었다. 나와 그 애는 그렇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인천으로 올라와서 그 애 생각이 안 난 건 아니다. 그치만 학업만 해도 너무 바빠서, 연애 감정이라곤 아예 잊고 산 듯하다.
그래서 더 만나고 싶은 지금이다. 어린 마음에 도망친 건 나지만, 학업도 전부 버리고 답답하단 이유로 고향에 온 지금에서는 그 애가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막무가내구나 싶다. 한 달이나 못 마주친 건 그 애가 날 피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일주일이 더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애의 뒷모습을 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반가웠지만 그 순간에 너무 미안해서, 주저해버렸다.
사흘 뒤에, 집에서 꽤 먼 길을 걷던 중에 그 애의 뒷모습을 봤다. 비가 매섭게 오는 날이었다. 그날의 그 애가 생각나서, 고민 않고 뛰어가면서 이름을 불렀다.
"이설!"
설이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내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놀라더니 들고 있던 감자 소쿠리를 그대로 놓쳤다. 우산은 던져버리고 나뒹구는 감자를 피해서 내게 뛰어오더니,
"왜 학교 안 왔어? 바보야."
하며 와락 안겼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금방 미안해져서는 한 손으로 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다 얘기해줄게."
우리는 밭 끝자락에 있는 정자로 몸을 피했다. 우산은 썼다지만 비가 너무 매섭게 오는지라 둘 다 꽤나 젖은 상태였다.
"너 정말 바보야? 내가 그날 얼마나…."
울먹이며 말하는 설이에게 그날의 내 심정과 이 동네에 오게 된 이유 등 생각나는 이야기는 전부 했다.
"그럼 이제 여기 살기로 한 거야? 혼자서?"
"응. 부모님은 인천에 계시고 나만 내려왔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이는 한 손으로 내 턱을 붙잡고 키스했다. 히아신스 향이 났다.
"우리 사귀자."
설이는 은연중에 내 마음을 눈치챈 듯했다. 고백보다 빠른 키스 때문인지, 키스보다 늦은 고백 때문인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좋아해, 설아."
그렇게 우린 마저 키스를 나누고, 비가 그칠 때까지 빗소리나 듣다 집으로 돌아갔다. 비 오는 날 밖에 너무 오래 있던 탓인지, 목이 간질간질해 계속 기침이 나왔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설이네 집으로 향했다.
"가자."
"응!"
우리는 어릴 때 자주 갔던 뒷산으로 갔다. 산책하며 그 시절 일을 떠올리고, 웃었다. 산들바람에 같이 누워 하늘을 보다가, 눈이 마주쳐 키스하고, 안아서 머리를 쓰다듬고, 꽃을 닮아 향기도 맡아보고, 다시 쓰러져서 하늘을 보고, 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둘이서 산을 걷고 있었다. 도중에 설이가 지갑을 떨어뜨려서 주워주다가, 신분증이 떨어졌다. 신분증 속 얼굴은 지금의 설이 얼굴과는 묘하게 달랐다. 우리가 스물둘이라 만든 지 3년 정도는 됐으니 말이다.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어때? 얼굴 조금 달라졌나?"
설이가 얼굴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이 더 예뻐."
"뭐래~"
아직 싸운 적은 없지만, 혹여나 싸우긴 싫어서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그때 애들은 지금쯤 뭐하고 살려나?"
내가 말하니, 설이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말했다.
"뭐, 잘 살고 있겠지. 전부 이사 가버렸으니까…."
"재현이 기억나?"
"와, 재현이 오랜만이다. 아직도 돈 많겠지?"
설이가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거 같네. 박지연 기억나?"
"당연하지. 금요일마다 지연이네로 옥수수 먹으러 갔잖아."
"너 그걸 아직도 기억해? 신기하네."
나는 설이의 기억력에 놀라며 이어 말했다.
"그때 김연 기억나? 졸업식날 나한테 고백했잖아."
내 말을 듣고 설이는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응. 너가 되게 못되게 찼잖아."
"좀 미안하네."
"왜 찬 거야?"
"못생겼잖아."
너무 쉽게 말해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설이는 잠깐 중얼대더니,
"하, 단순하네."
"이제 슬슬 갈까."
시간이 꽤나 늦어져 서둘러 산길을 밟았다. 이런 시골구석은 해는 눈 깜빡할 새에 떨어지고, 여름에도 산속은 무지 춥기 때문에 빨리 내려가야 했다.
설이가 춥다고 빠르게 내려가서, 내가 그 뒤를 걷게 됐다. 머리가 보이는 게 귀여워서 놀리고 싶었다.
"아직 쌍가마야?"
머리를 붙잡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쌍가마? 무슨 쌍가마?"
나는 사색이 됐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집에 돌아왔고, 날이 밝자마자 곧바로 인천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