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흐르는 건, 남은 방울들의 갈라짐이었다. 컵 속의 혈관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러고는 빙글, 의자를 한번 돌려본다. 조용하고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건 꽤나 많다. 컵에 남은 붉은 음료를 이러저리 휘청이다 보면, 내 머릿속도 마치 이 컵 속처럼, 여기저기 부딪히고 뭉쳐져 방울방울 해진다. 좁은 방은 답답하니까, 방울에 전부 쑤셔 넣는다. 방울에 맘껏 쑤셔 넣고 난 뒤에는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고, 다시 쑤셔 넣고, 반복. 방울이 터질 즈음에 '알겠어, 괜찮아.' 그러고는, 또 사랑을 하고, 아아, 아아, 쏟고 붓고 부숴버려도 부족한 사랑이다. 바보 같은 노래만 조용히 질러대다 보면 조금은 채워진 사랑에 들어줘, 들어줘, 소리쳐도 대나무숲일 뿐인 좁은 방에서, 사랑을 하고, 다시 쑤셔 넣고. 휘청이는 컵에 사랑을 담아서, 들어줘, 마셔줘, 다시 쑤셔 넣고.
언제부터일까 흥건한 바닥의 붉은 음료는 보글보글, 머리는 빙글빙글, 단내에 몰려든 개미는 와글와글. 마시지 말아줘, 말아줘, 애원해도 다시 한번 휘청인, 컵에 흐르는 건, 굳은 향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