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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by 이지

가끔 내가 죽고 난 뒤의 세상을 떠올려본다. 무엇을 떠올리더라도 그 세상은 그 세상이 아닐 것이란 걸 잘 안다. 그치만 떠올려본다. 누가 가장 슬피 울지, 어느 누군가 이 글을 읽을지도 떠올려본다. 살아가며 날 가끔 떠올려줄 친구들도, 많이 떠올려질 가족들도 떠올려본다. 난 죽음에 가깝지 않다. 죽고 싶지도 않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죽음을 떠올린다. 언젠가 곱게 바스라진 입자가 된 나를 떠올린다. 썩어 문드러질지, 불에 타버릴지, 증발해 버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나뿐이 아닌, 내 흔적도 전부 지워진, 내가 삭제된 세상을 떠올려본다. 이 글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오늘 외운 수학 공식은 작은 입자가 되었다. 사랑한 기억은 바람이 되고, 사랑한 사람은 여전히 바람이다. 나는, 나는, 피아노 연주는커녕, 건반 하나 누르지 못하는, 가벼운 먼지가 되었다. 악보를 볼 수 있는 눈알은 녹은 지 오래인 채. 나는 죽는다. 이렇게 죽을 것이다. 먼지가 되어서, 스물한 번을 파쇄기에 들어간 종잇조각보다도 작은 먼지, 티끌이 된다. 나는 티끌이요, 나는 죽었다.


모두가 죽었다. 언젠가 그랬다. 나도 그랬다. 죽은 뒤에도 기억되고 싶은 건 욕심일까?

전혀 잊히고 싶지 않다. 너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 단순한 고통에 느끼는 두려움 따위가 아닌, 나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내 손가락 하나하나가 없어지고, 열심히 외운 팝송이 사라지는 이야기. 사랑한 사람은 사실 없고, 시원한 바람이 다시는 불지 않는 이야기. 더 이상 손톱도 발톱도 자라지 않고, 머리가 간지럽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 그 이야기는 절대 허구가 아니다.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반드시 오게 될 이야기. 너도나도 티끌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이야기.


모두가 죽는다. 언젠가 그렇다. 나도 그렇다. 우린 하나같이 허연 백골 가루가 된다. 그마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풍화되어서, 우린 먼지가 된다. 티끌이 된다. 나는 살아오며 마셔온 티끌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티끌은, 너에게 만큼은 반짝인다. 네가 좋아하는 그 색으로, 아주아주 반짝인다. 너는 내 티끌을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한 채, 티끌이 되어간다. 너는 날 사랑한다. 나는 네가 사랑했던 티끌. 내 티끌은 아주아주 반짝이는, 사랑받는 티끌. 남들과는 다른 티끌.

밤하늘의 별 같은 티끌.

티끌이 된다. 나는 티끌이요, 나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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