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음악에 미치지 못하고 독서에 목숨 걸지 않으며 사랑을 사랑할 수 없는가?
즐겨듣는 음악에도, 좋아하는 구절에도, 사랑하는 당신께도 전부 '미침'이 있건만 그것이 나에게만 없다. 정말 나에게만 없다. 찰나의 순간 고막에 흘러들어오는 화음과 목소리에는 미침이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는 그 책의 첫 구절에는 미침이 있다. 어쩜 이리 위치마저 완벽한지 살짝 패인 당신의 보조개와 그 미소에는 미침이 있다. 그치만 나에게는 없다. 나에게는 미침이 없다.
기타를 잡아도 완곡은 할 수 없다. 책 한 권 읽어도 멋들어진 문장은 쓰지 못한다. 당신을 사랑해도 당신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에 미치지 못한다.
그치만 인간이라는 건 항시 무언가에 미쳐있는 존재가 아닌가?
사랑이라는 게 이곳에 실존한다면 당신과 나는 원래부터, 여전히, 지금껏, 앞으로도, 언젠가, 그럼에도 미쳐있어야 하는 것인데, 어째서 나는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나의 대답은 이렇다.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미움을 미워하며 사랑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통상적인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치만 '미침'에 '미치는 사람'은 없다. 미움은 미워할 수 있다. 사랑은 사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침에 미칠 수는 없다. 있다면 그건 가짜다.
앞마당에 굴러다니는 풀 한 포기에 미칠 순 있더라도 미침에 미칠 수는 없다. 미침에 미친다는 건, 미침에 미친 미침에도 미치며, 미침에 미친 미침에 미친 미침에도 미치며, 미침에 미친 미침에 미친 미침에도 미친 미침에까지 미친... 무한히 연쇄되는 미침은 그 자체가 '미침'이다. 그렇기에 인간인 우리는 미침에 미칠 수는 없다. 그건 '미침'만이 가능하니까.
그치만 '미치지 않는 것'에 미치는 것은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인간이 그런 상태일 거라고 자부할 수 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게 가장 쉽다. 미친다는 건 어렵고, 힘들고, 짜증 나기도 한다. 맞는 말이지만, 정의를 따져보자면 오히려 그 반대가 옳다. 미친다는 건 쉽고, 행복하고, 편안하다. 사랑하지 않으면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만, 언제나 사랑이 전제된 이 '미침'이라는 감정의 덩어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행해진다.
어디에나 자신의 안전에 예민한 인간들이 있다. 또 매사에 전혀 의지가 없는 인간이 있다. 그런 인간은 어딘가에 미치는 걸 포기한다. 그치만 인간은 미치지 않을 수 없어서, '미치지 않는 것'에 미치는 것이다.
미치지 않는 것에 미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미치지만 무엇에 미칠지 정도는 스스로의 선택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미침이라는 건 반드시 후천적이다. 그렇기에 미침의 발생은 10년 전일 수도, 오늘일 수도, 다음 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다양한 강도와 형태의 미침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금 무엇에 미쳐있든 좌절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미치지 않는 것에 미쳐있다면, 그건 어쩌면 단순히 미친다는 게 무서워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미쳐있다. 너도 미쳐있다. 미움을 미워하고 사랑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우린 미쳐있다. 이 글이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그 순간 '내 글이 헛소리라는 그 생각'에 미쳐있다.
위에서의 '나'라는 인간은 미치지 않는 것에 미쳐있지만, 작가 본인은 그렇지 않다. 이것저것 사랑하며 하다못해 이것저것 사랑하는 본인마저 사랑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복잡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좋아한다.
나는 그것에 미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