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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퍼 Feb 04. 2022

재택 시대의 주니어로 살아남기

출근과 동시에 집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한창 전국이 골머리를 앓던 2020년 7월, 나는 k사 인턴으로 합격했다.

인턴 하나만 보고 지방에서 상경한 나에게는 그 자리가 꽤나 간절했고, 밤을 새어가며 개인과제와 조별과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팀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회의 중이었는데 회사에서 코로나 관련 긴급 공지가 떨어졌다.


"현 시점부터 재택근무로 전환됩니다.
재택 근무를 대비해 VPN 설치 및 노트북을 지참하고 퇴근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바로요...? (어리둥절)


이런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재택 근무를 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나와 팀원들 모두 당황했다. 일단은 노트북과 개인 짐을 바리바리 싸서 집으로 향했다. 가면서도 '우리 조별과제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 시절, 감염보다 무서운 것은 불합격이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확진자는 계속 나오고 거리두기 정책도 점차 강화됐다.

최종 합격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재택 근무 중인 주니어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다른 회사 친구들은 출근을 한다던데'로 시작하는 대화는 어느 정도 내게 위안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한 번도 재택 근무를 경험해 본 적 없던 나에게 설명할 수 없는 재택의 낭만이 있었으나...

1년 반 넘게 재택근무를 하면서 모든 것이 와장창 났다.

재택근무에 대한 낭만은 다 틀렸다. 그저 '이상'일 뿐이었다.




주니어가 느끼는 
재택의 이상과 현실 



재택을 시작하기 전, 몇 가지 재택근무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그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1. 톡으로 업무를 주고 받는 시대라니! 엄청 프로페셔널하겠지?

-> 아니.. 대개는 프로페셔널은 커녕, 내가 모르는 영역이 나오면 질문 한 번 하기도 어렵다. 특히나 팀원들과 사이가 가깝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사소한 걸 물어봐도 되나...' '너무 바보같아 보이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면서, 점점 질문하기를 미루게 된다.


2.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내리고, 여유롭게 책도 읽고,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겠지?

->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허둥지둥하게 된다. 만약 10시 출근이라면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져, 9시... 9시반... 어떤 날에는 9시50분에 가까스로 눈이 떠지기도 한다.

이는 일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샤워를 하고, 매무새를 가다듬고, 옷을 갖춰입고, 소지품을 챙기고,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까지 하는 이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피로감이 없으니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고 집 안의 좁은 책상과 침대가 인생의 다인 것처럼 느껴져서 우울해지는 날도 생긴다.


3. 상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사생활 보장도 되니, 스트레스도 안 받겠지?

-> 스트레스를 안 받는 만큼 그 아무도 내게 관심도 없다. 제발 누가 나한테 관심 좀... 줬으면 좋겠다. 그 아무도 나서서 내게 일을 알려주거나 디렉션 해주지 않는다. (필자의 회사에는 상사 개념이 없고 멘토-멘티처럼 매칭시켜 주는 버디의 개념이 있는데, 같은 프로젝트에 얼라인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동기가 없다면 더더더 외로울 수 있음 주의! 게다가 누군가에게 혼나거나 디렉션을 받지도 않으니,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측정이 불분명해진다.


4. 온라인으로 하는 미팅, 부담 없어서 좋다!

-> 때때로는 세수도 안 하고 미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몸가짐이 반듯하지 못하니 미팅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특히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질문하거나 의견을 발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나 비디오를 끄고 있다면) 현실 미팅에서보다 훨씬 더...


5. 내 일상이 보장받으니, 워라밸이 더 좋아지겠지?

-> 일상이 단순해진다. 일과 잠, 밥이 다인 것 같은 날도 생긴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책상까지 이동하면서 갖은 생각을 다 한다. 내 삶이 고작 요 정도 평수인가.. 하고. 일이 끝나도 노트북으로 회사 업무 사이트를 헤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댈 수도 없는,
재택 시대에서 주니어로 살아남기 


(안 그런 곳도 있을 수 있지만) 재택은 언젠가 풀린다. 재택 근무가 다시 비활성화 되고, 온사이트 상태에서 출근을 해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것은 미래의 나다. 여전히 학생이나 취준생 때와 비슷한 루틴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 일의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주니어 때 일의 습관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이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일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름 몸으로 구르며 느껴본 재택에 적응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추천한다.



1. 셀프 매니지먼트를 하기!

톡으로 주고받는 업무는 휘발성이 강하다. 사수가 없는 상태라면 내가 모든 일들을 매니지먼트 하기 어려운 시점이 반드시 온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재택 환경에서는 반드시 셀프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나는 이 과정을 갓 입사한 주니어 때 거치지 않았기에, 1년이 휘발되어 버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ㅠ)

일간/주간/월간 업무를 작성하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강점이 있는지, 어떤 약점이 있는지, 어떤 부분에 성장의 욕구가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상황과 실력 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메타인지'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요즘에는 워낙 이러한 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몇 가지 중 테스트를 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툴을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

추천하는 툴은 아래와 같다.


1) TIL (Today I Learned)
그날그날 자신이 공부한 것을 회고하는 방법이다.
보통 it 회사의 개발자분들이 깃허브 등 기술블로그에서 잘 활용하시는 사례를 많이 봤다.
워낙 기록을 잘하는 분들이 많기에, 참고할 만한 사례를 하나 첨부해본다.
*한 개발자님의 TIL 사례 첨부


2) OKR (Objectives and Key Results)
한국어로 직역하면 '목표와 성과 지표'라는 말인데,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가 어디까지 달성되었는가 수치화하는 프레임 워크이다.
실제로 나도 주니어들의 모임인 '힙주비'에서 작성하고 성과를 위해 달성 중인데,
이건 다른 브런치 글에서 너무너무 작성을 잘 해주셔서, 이것도 첨부해본다.
*OKR을 제대로 작성하고 사용하는 법



나의 OKR 만다라트 / 그리고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
3) 만다라트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능력치를 키우기 위 사용한 방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만다라트' 기법.
가운데에 자신이 최종적으로 되고 싶은 목표 꼴을두고, 그에필요한 역량들로 주변을 채워나가는 방식이다. 가운데에서부터 시작해 가장자리로 가면서 목표는 더욱 구체화된 실행방식을 띈다.
*더 구체적인 만다라트 사용방법


이 작업은 @celine @marine @joy와 함께 진행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천재 동기들ㅠ)
4) 피자파이
입사 후 동기가 알려준 툴인데, 이거 참 물건이다. 피자라는 힙한 오브제가 있으니 이를 채워가는 재미도 있고 여러 역량이 한 눈에 보이니 명쾌하게 나를 알 수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역량이 발현되기 전까지는 피자파이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과 생각보다 피자를 채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과제를 하거나 5년, 10년차 로드맵을 세울 때 추천한다.
(참고로 구글에 검색하면 피자파이를 맛있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만 나와서, 정보가 별로 없다. 다음에 상세하게 요 툴만 다뤄보겠다.)




2. 내 일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일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가끔 일에 강제성을 부여한다.

데드라인을 일부러 정해두고 "00시까지 문서 전달드릴게요!"라고 아주 못을 박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꼭 그때까지 해야되걸랑..ㅠ 이를 '데드라인 드리븐 방법'이라고도 한다.)


이 방법이 먹히지 않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면, 가끔 온사이트 출근을 결심한다. 팀원과 점심 약속을 잡거나 티타임을 잡는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강제로라도 출근을 하게 되고, 결국 그날 하루는 몸을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샤워를 하고, 매무새를 가다듬고, 옷을 갖춰입고, 소지품을 챙기고,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까지 하는 이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피로감이 아주 가끔은 필요할 때도 있다.


일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진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획해보는 것 역시 추천한다. 나는 지금 힙주비(힙한 주니어들의 비밀)이라는 성장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데, 같은 주니어들끼리 커리어를 고민하고 일을 잘하기 위한 여러 방법론을 적용해 보는 중이다. 이렇게 일단 일을 벌리면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시간을 투자하게 되면 평일이 긴장 상태인 채로 흘러간다. 주니어들에게 이런 긴장 상태가 나쁘진 않은 듯! 



3. 상사를 괴롭게 하고(?) 적절한 피드백 받기!

'셀프 매니지먼트를 하기'과 연결되는 단락이긴 하지만.. 재택근무가 주니어에게 미치는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때그때 내게 필요한 피드백이나 조언을 듣기 어려우니, 내 일이 어떤 점에서 잘하고 있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 때문이라도 상사를 귀찮게(?) 해야 한다. 회사에서 정해준 사수가 없으면 더욱!


적절한 피드백을 받고 나자,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닫고 팀 리더께 개인적인 연락을 보냈다. 너무 따수운 답변이 돌아왔다.


어떻게 귀찮게 해야 하나..?를 모르겠다면 내가 써본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1) 모르는 건 그때그때 물어보자.

'이렇게 사소한 걸 물어봐도 되나..'하는 마음은 잠깐 접어두고 '저는 주니어니까 모를 수도 있죠..ㅠ'라는 다소 연약한 마음을 가져도 좋다. 제대로 물어보기만 한다면!


2) 정확히 내게 '어떤 피드백을 달라'는 걸 전달한다.

나는 보통 문서를 공유할 때 메모에 '이 부분이 고민되어서, 1과 2를 생각했는데 어떤 방향이 맞을까요?' 등의 멘션을 추가해둔다. 그럼 내가 헷갈리는 부분에 대한 명확한 디렉션을 받아볼 수 있다.

혹은 직접적으로 팀원에게 말할 수도 있다. '제가 지금 이 프로세스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되는데, 시간이 되면 잠깐 온라인 미팅으로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3) 심각하지 않은 선에서, 오프라인 만남을 가끔 갖는 걸 추천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프라인 만남을 가지는데, 회사에서 점심 약속을 잡거나 티타임을 잡기도 한다. 역시나 네트워킹에는 백 번의 온라인 만남보다 한 번의 오프라인 만남이 강력한 것 같긴 하다.



4. 온라인 미팅에서 각종 기능을 잘 활용하기! 그리고 꼭 회의록 작성하기

온라인 미팅에서는 '끼어들기'나 '의견 발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팀원들의 얼굴조차 모르는 주니어일수록 (=나) 더 힘들어지는데.. 그럴 때는 온라인 미팅 플랫폼 내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볼 것을 추천한다. 요즘엔 구글밋에서 손을 들어서 발언권을 얻거나, 줌에서 다양한 리액션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회의에 대한 일시적인 흥미와 집중도를 높여줄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회의 자체에 관여도가 높아야 회의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회의에 대해 아는 게 많아야 말이 술술 나오고, 의문점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회의록을 꼼꼼히 작성할 것을 추천한다.


회의록 예시

위는 내가 작성한 회의록이다. 린하고 빠르게 각종 이슈들을 체크해야 하기에 완벽한 문서를 만들기보다는 노션에 빠르게 캐치하는 식으로 작성한다. 대신 주제나 아젠다 별로 섹션을 나눠서 보기 편하게 정리해둔다. 회의가 끝나고 2분 정도 빠르게 회고를 진행하면서 내 의견을 댓글로 덧붙이면 더 좋다.

(보통은 팀원들에게 회의록을 공유하기도 하나, 필수는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쓴다. 내가 그때그때의 아젠다를 놓치기 싫어서.)

(언제 한 번 회의록 작성과 공유에 대한 브런치 글을 써야겠다.)



5. 나만의 루틴 만들기

내 일상이 보장받으니, 워라밸이 지켜질 것이란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출퇴근 하는 시간과 기운을 아껴 일에 집중할 수 있으나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업무 시간이 한 없이 길어진다.


나 역시 미라클모닝 같은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룰을 만들어두려 한다

그러니 꼭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출근 전은 물론 퇴근 후의 루틴도 정해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출근하기 전에는 '샤워, 향수 뿌리기, 책 1장 읽기'로 정해두거나 퇴근 후에는 '7시 퇴근 후 꼭 집밥 해먹기, 8시 뉴스 보면서 저녁 먹기'등으로 정해두면 좋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같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

룰은 그저 룰 자체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준다. (초등학생 때 시간표를 만들어 지켰던 것처럼!)






<신경 끄기의 기술>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성공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이다. 특히 직장 생활을 시작한 초급 사원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허드렛일을 견디는 것이다."

성장에 목말라 초조하고 불안한 주니어 때는 하루 빨리 중요한 일을 맡고 싶겠지만, CS나 QA 등 자잘한 운영성 업무에 지루함을 느끼면 앞으로의 일들이 한없이 지루해진다. 작은 일들이 쌓여 내게 체화될 수 있도록 하자.



아래, 주니어의 재택 근무를 위한 몇 가지 책을 추천한다. (To. 주니어.. From. 주니어...)

후루룩 읽기 좋은 책들이니 전자책으로라도 읽어보는 것이 어떨지!


그럼..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주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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