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조직장을 만나고 싶어요...
나는 그동안 다양한 성격의 조직장과 함께 일해왔다. 어느 한 조직장은 회사 컴퓨터로 성매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내게 발각된 적도(우웩) 있을 정도...
그런가 하면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친구가 곧 조직장이었던 적도, 모든 속내를 터놓고 상담할 수 있는 믿음직한 조직장을 만나기도, 일을 할수록 계속 일을 만드는 조직장을 만나나 고통받기도, 퇴사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는 친근한 조직장을 만나기도 했다. 함께 업무를 수행할 때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사람이 회사 밖을 나오니 브랜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한 친구가 될 때도 있었다.
조직장은 주니어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왜...
대체 조직장은 왜 나를 힘들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걸까? (원망 ver)
나는 좋은 조직장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자괴감 ver)
어쩌면 내가 조직장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건가..? (자의식 과잉 ver)
각설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조직장'에 대한 나의 기준이다.
실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좋은 조직장으로 생각하는지, 인격 자체가 선한 사람을 좋은 조직장으로 생각하는지, 조금 엄격하더라도 나를 좋은 커리어로 데려가주는 사람을 좋은 조직장으로 생각하는지... 내가 느끼는 '좋은 회사생활'과 그에 따른 '조직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의 내릴 줄 알아야 좋은 조직장을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이건 누가 정해줄 수도 없다.
정해줄 수는 없지만 참고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늘 다룰 이야기는 내가 일하면서 느꼈던 '좋은 조직장이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기준이다.
주의!
대충 시키는 일만 하고 넘어가는 것이 회사생활의 목적이라면 이 글의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조직장을 발견하는 눈 기르기
'좋은 조직장이란 어떤 사람일까?'
회사생활 하면서 인품이 훌륭한 분을 만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일 테지만, '인품이 훌륭한 조직장'이 곧 '좋은 조직장'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이냐고? 다른 문장에 대입해보면 이해가 쉽다.
성격은 착한데 자세를 엉망으로 가르쳐줘서 내 무릎 도가니 다 나가게 하는 트레이너?
>좋은 트레이너 아님
진짜 친절하신데 음식 조리가 너무 지저분한 곳?
> 좋은 맛집 아님
사람 너무 좋은데 총알 하나도 못 막는 경호원?
> 좋은 경호원 아님
나는 '성품이 좋은 조직장 vs 조금 힘들지만 일 잘하는 조직장' 중 고르라면 후자를 고르고 싶다. 친절하고 착한 것이 강점인 조직장은 좋지만, 오직 그것 뿐인 조직장은 아랫 사람들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실무들이 조직장 대신 나서서 싸워야 하고, 조직장 바로 아래에 주니어만 있다면 그 골치는 더 커진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남의 팀 일을 대신 하고 있는 경우도 생기고...)
때로는 '조직원을 왜 설득해야 해? 조직원이면 그냥 조직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조직장도 있다. 이런 경우 도망쳐야 한다. (농담이에요 ㅎㅎ 사실 농담 아님)
조직원도 설득할 수 없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유저에게 가서 닿을 수 있을까? 좋은 조직장은 자신의 의견을 조직원에게 설득할 줄 안다. 반대도 마찬가지. 조직장은 언제든 조직원에게 설득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설득하지(되지) 않는 조직장은 조직을 서서히 고이게 만든다.
아래와 같은 경우는 설득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늘 이런 식으로 해요. 맞추세요.
> 전혀 설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조직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키운다.
그 아이디어.. 그냥 안될 것 같아요. 너무 키치해요.
> 어느 정도의 아이디어 수위를 원하는 건가 정확히 공유해주고 그에 대한 상호 설득과정을 겪어야 한다.
ㅇㅇ씨가 제안해준 다른 인플루언서도 좋긴 한데.. 저는 유명한 ㅁㅁ씨를 꼭 쓰고 싶은데요. 제가 요즘 자주 보거든요.
> 설득이 아니라 그냥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 (슬프게도 대부분 이런 일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해당 프로젝트가 잘됐다, 아쉽다를 판단하는 것은 주니어도 할 줄 안다. (좀 더 과장하자면 유저도 아는...)
물론 일잘러는 결과만으로 평가 받는 데에도 아쉬움이 없을 수 있지만, 주니어는 다르다. 첫 술에 배부르기 어려운 주니어는 자신의 과정까지 함께 지켜보고 그 안에서 디렉션을 주는 조직장이 필요하다. 프로젝트의 결과가 다소 아쉽더라도 회고의 과정을 거치며 프로젝트 진행 과정의 명암에 대해 함께 되짚어 볼 수 있는 조직장이라면, 다음 프로젝트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주니어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kpi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라고 단정짓고 '다음에는 꼭 예산도 높고 회사에서 중요도도 높은 일을 맡아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 그 과정에서의 페인포인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한 영역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혹시나 스스로 잘 안 보인다면 꼭 조직장님께 티타임을 요청해 상담해보자. 일하는 과정에 대한, 방법론적인 발전도 쌓여 결과물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간혹 가다 너무 심한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조직장이 있다. 실무가 말 꺼내기 무섭게 자신의 의견만 피력한다거나, 문서의 목적과는 관계 없는(!) 디테일 하나하나 꼬집는다거나, 단어 하나에 꽂혀서 잘잘못을 따진다거나, 완성된 문서를 꼭 자신의 스타일대로 다시 만든다거나... 이런 조직장은 조직원의 사기를 떨어트린다.
물론 주니어는 일하는 습관이나 태도 등을 배워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마이크로 매니징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너무 심한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거나, 아주 사소한 것까지 디렉션을 주는 조직장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퍼스널리티를 찾기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그 조직장이 원하는 대로 그의 손발이 되어 일하게 될 뿐이다. 언젠가 조직장 없이 자신만의 일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아무것도 자기 손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곧 주니어의 성장 가능성을 저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주니어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고.)
너무 당연한 거지만 조직장의 역할은 조직원을 100% 잘 활용하는 것이다. (말이 좀 웃기지만..) 같은 조직원이라도 그 사람의 능력을 40% 쓰도록 하느냐 120% 쓰도록 하느냐에 따라 조직이 내는 전체적인 퀄리티도 달라지고, 조직원의 성취감 역시 달라진다.
내가 그동안 몸 담았던 조직 중 만족도가 높았던 곳은 대부분 조직장이 나의 장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강점으로 치환해주는 능력이 뛰어났다. 예컨대 내가 인스타그램에 글 쓰는 걸 보고 카피라이팅 업무도 잘 할 것 같다며 기회를 준다거나, 말랑말랑한 아이디어를 망가지지 않게 대표님에게까지 잘 팔아오신다거나... 누구나 갖고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장점도 나만의 강점으로 다듬어 만들어주시는 조직장이 가끔 있다. 나도 몰랐던 내 강점을 발굴해주는 조직장이라면 꼭 놓치지 마시길!
가끔 노비로 살다보면 대감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정확히 모를 때가 있다. 대표와 아주 멀리 있는 존재인 주니어의 경우 더하고, 노비 수가 엄청 많은 대감집 노비일수록 더 하다. (사측과 조직원들의 의견이 완벽히 일치한다면 세상에 노조는 없겠지...)
그렇기에 주니어는 조직장의 눈을 빌려야 한다. 사측의 의견, 대표님의 방향성, C레벨이 원하는 뉘앙스... 이 모든 것들은 대개가 조직장의 필터링을 거쳐 조직원에게 전달된다. 그렇기에 이 '전달자'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장은 우리 회사의 의견을 곡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우리 조직이, 조금 더 멀리 가서는 우리 회사가 원하는 목표와 수치에 대한 공유가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을 수 있다.
가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한 문서만 몇 달 동안 만들 때가 있다. 개발자는 서비스를 출시해봐야 하고, 마케터는 캠페인을 릴리즈 해봐야 성과가 생기고 일이 늘듯, 누구에게나 실행은 기획만큼 중요하다.
그렇기에 문서 만들기와 보고 과정에 모든 디테일을 쏟으면 정작 실행 단계에서 헥헥거리게 된다. (아무리 3대 500 치는 사람도 1시간 동안 계속 무게를 칠 순 없지 않은가?)
간혹 최상위 조직장(부문장, 상무, C레벨 등)이 완벽한 문서를 원할 수 있지만.. 문서와 실행에 대한 시간적, 인적 리소스를 잘 조절하는 것 역시 절실히 필요하다.
Z세대는 업무적으로 지적이나 쓴소리를 듣기 싫어한다고..?
아놔.. 절대 아니다.
다른 세대도 마찬가지겠지만, Z세대 역시 부정적 피드백이 싫은 게 아니라 '피드백이 없는 게 싫을' 뿐이다.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회고나 피드백이 없다면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는건지 헷갈리니까.
평가도 마찬가지. 좋은 평가만 주는 조직장은 좋은 조직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조금 부정적이고 날카로운 평가라도, 그 평가로 말미암아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최악은 평가에 대한 기준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내가 앞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어떤 업무적 약점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참고) Z세대와 관련된 더 많은 글은 <Z세대 주니어 대하는 법 알려드려요> 아티클에서!
(이쯤되니 조직장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수행하는 좋은 조직장들도 왕왕 만났기에 이 요소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아쉬울 것 같아서 마구 집어넣어봤다..)
완전히 건강한 멘탈을 유지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자주 들여다보고 '소통이 된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하다. 아주 가끔 티타임을 하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회사 일에 대한 한탄을 나누고.. 이런 시간들이 퇴적되는 감정을 꽤 씻겨 내려가게 도와주기도 하니까.
글을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 나는 '절대적으로 나쁜 조직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 인성적으로 이상한 사람 제외) 좋은 조직장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싶다. 조직원들과 한 배를 타고 한 방향으로 함께 항해를 떠난다고 생각한다면 조직원의 성취가 곧 조직장의 성취로 이어지지 않을까?
아직은 조직장이 되어본 적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팀을 꾸리리라..
세상 모든 조직장들 화이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