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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퍼 Sep 06. 2022

회사는 왜 재택근무를 선택했을까?

몸이 덜 힘들수록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꽤 지난 일이긴 하지만) 회사가 재택근무를 결정했다. 회사의 재택근무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언론에서도 다루고 있다. 과연 이 문화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일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감시할 것인지, 이미 지어둔 사옥은 어떻게 활용할건지, 앞으로 주 4일제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을지...


약 2달 간 전면 재택근무를 시행해본 주니어 입장인 나. 위처럼 재택근무와 관련된 질문을 엄청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답변은 매번 비슷한 결이다. "재택근무 정말 좋다. 이전으로는 못 돌아가겠다."

그렇다면 나는 '단순히 집에 계속 있는다'는 개념 말고, 어떤 점이 좋아서 회사의 재택근무를 사랑하게 된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브런치 글에서는 회사가 왜 재택근무를 선택했는지, 재택근무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다뤄본다.



01 오프라인 출근이 꼭 성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미 다양한 기사와 사례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재택근무를 시행한 곳에서 성과가 크게 무너진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구글식 성과관리' 사례처럼 조직장과의 친분 관계, 업무 시 자세나 태도, 옷차림, 사회성 등 부수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성과 그 자체'로만 판단하게 되면서 성과가 비로소 거품을 벗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니어라면 제대로 눈 씻고 자신의 OKR만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회사 안 일종의 라인(?)도 파악해야 하고, 조직장의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갈아끼워야 하며, 그나마 쉬는 시간인 식사시간에도 마구 머리를 굴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 그 자체'가 아닌 이런 '일 외적인 일'들을 하면서도 방전되는 기분이고, 내가 꽤나 무언가를 성취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재택근무 공간에는 따라다니며 물어볼 수 있는 사수도 없고, 곁눈질 하며 문서를 훔쳐볼 옆사람도 없으며, 어려운 문제에서 '좋은 게 좋은거죠'라며 넘어갈 수 있는 티타임도 없다. 그렇기에, 특히 주니어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비로소 '내 일에 무엇이 부족했는가'가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는 곧 일 자체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OKR 설정을 하게 되고, 실패하거나 성취하는 과정을 이룩하게 된다. 얼핏 보면 비효율적으로도 보이는 이 과정을 통해야만 주니어도 이윽고 일 인분의 몫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재택근무는 주니어에겐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02 낭비되는 리소스를 줄일 수 있다. (각종 업무 외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01에서 서술한 것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일단 회사에 출근하는 날은 전날부터 기분이 우중충하다. 다음날 비 예고라도 있다치면 눈물이 찔끔 난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와 꿉꿉한 날씨, 발 디딜 틈 없는 비좁은 대중교통을 꾸역꾸역 타고 출퇴근을 할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출근하고 나면 일단 진이 다 빠진다. (이전 어떤 회사에서는 힘들었던 출근길을 핑계로 오전 내내 취침을 청하시는 팀장님도 계셨다..) 오전 시간을 어찌저찌 보냈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서울 경기권 회사 근처 점심시간엔 웬만한 곳은 웨이팅이 있기 때문이다. 12시가 점심시간이라면 족히 20분은 일찍 나가야 겨우 시간 맞춰 식사할 수 있다.


아침 출근길 내 모습

물론 이런 요소들이 업무 효율에 직격탄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생활기스가 잦으면 전체적으로 물건이 낡아지게 되고, 중고거래에 올려도 잘 안 팔리지 않는가. (잔뜩 네고만 당하고...) 이런 시간들이 쌓여 직장인의 승모근 건강을 위협한다. 정작 중요한 업무가 아니라.


재택근무를 진행하고 나서는, 중요한 대외미팅이나 여러 부서가 협업하는 대규모 회의의 경우에만 오프라인 미팅으로 참석 중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자 '오프라인 미팅=중요한 미팅'이라는 나름의 중요도가 생겼고, 온오프라인 미팅 할 것 없이 각 업무에 적당한 리소스를 배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파트는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출근하면서 점심도 먹고 일에 대한 대화도 함께 나눈다. 가족도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다지 않은가. 나도 우리 파트와의 이런 느슨한 연결이 꽤 마음에 든다!

 

재택근무 하고나서 점심시간이 참 편하다. (원래 불편했던 것도 아님) 먹기 싫으면 대충 먹고, 휘뚜루마뚜루 쉐이크를 먹기도 하고, 안 먹고 자거나 산책해도 되고.



03 더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진다.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하고 디테일할수록 나쁠 것 없다

온라인 미팅이나 카톡 상황에서는 협업하는 상대의 뉘앙스나 표정, 대략의 묘사 정도만으로는 완벽히 100% 같은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 명확히 디렉션하고, 더 명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프라인에서는 휘뚜루마뚜루 커뮤니케이션을 해도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습관이 주니어의 몸에 쌓이면 아주 독이 된다. '대충 뉘앙스로 그거 해주세요'와 '정확하게 이거 해주세요'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주 디테일하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니어에게는 시도할 만한 여지가 많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



04 회사가 크루를 신뢰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에 더해, 대외적인 이미지도 챙길 수 있다.

회사가 '원격 근무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일개 작은 사원인) 나는 '회사가 조직원들을 믿고 신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은 몰라도 도입 과정이 지난했을 것임을 대략은 예측하기에, 애사심도 조금 솟구쳤다.


사실 회사가 재택근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조직원들에게 '신뢰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신뢰해보기로 결심'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재택근무가 시행된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어쨌든 회사에서 한 발 크게 나아가보기로 다짐한 것이다.

조직원들의 이런 작은 마음의 변화는 얼레벌레 큰 조직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회사의 작은 차별에 서운함이 생기고, 작은 복지에 애사심이 생기는 것처럼.


사측에서는 (예상컨대) 대외적으로도 훌륭한 복지요소 중 하나다. 출근보다 재택을 선호하는 인재들이 더 적극적으로 회사에 지원할 수도 있고, 선진적인 사고를 하는 회사라는 인식도 줄 수 있고...



05 각자 자신에게 맞는 업무방식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나는 오전에 굉장히 골골대는 편이다. 오전에 비해 늦은 오후 업무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후가 될수록 머리가 맑아진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10 to 7이 딱 적당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별안간 오전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8 to 5나 9 to 6을 선호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택근무 / 실제 내 모습 (생각보다 일이 쏟아져서, 미팅 중간 화장실도 뛰어 갔다 온 적도 있음)

오전 업무를 선호하든 오후 업무를 선호하든 재택 근무의 핵심은 '자신이 가장 효율적인 시간을 찾아서 운영'하는 것에 있다. 주변 몇몇 사람들이 '재택 근무=누워서 쉬면서 일 대충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 코어타임제를 운영하고 있고, 언제든 미팅이 잡힐 수 있으며, 업무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으니 재택 근무 중에도 완전히 일에서 손을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뿐 아니라 재택 근무를 하면 소소하게 집에서 등기를 받거나, 점심시간 짬을 내서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업무시간을 잠깐 오프하고 은행에 다녀오거나, 오후에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등 유연하게 개인 업무와 회사 업무의 비율을 조율하며 일할 수 있다. 개인의 일상 업무가 멀끔하게 해결될수록 회사 업무에 쏟아지는 체력을 안배할 수 있다. 이는 곧 조직 전체의 효율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06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늘어난다.

05의 연장으로, 다양한 업무/협업 방식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난다. 팀 단위로 색다른 툴을 쓰며 재미를 찾기도 하고 개인  단위로 워케이션을 하면서 업무 환경을 개선해볼 수도 있고.

개인 단위로 알음알음 도전해보던 워케이션도 하나의 공공연한 복지로 정착하기 시작하고 있다(관련 기사). 이전 브런치 시리즈에서 다뤘던 것처럼, 워케이션을 진행하면 새로운 환경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워케이션 관련 브런치 글1 워케이션,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워케이션 관련 브런치 글2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일하기

워케이션 관련 브런치 글3 휴양지에서 일이 돼?

워케이션 관련 브런치 글4 워케이션 떠나기 전 투두리스트


우리 팀의 게더타운 귀엽다 .. 매주 목요일마다 우리는 여기서 만난다

실제로 우리 팀은 매주 얼굴 보고 밥 먹는 날 외에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게더타운에 모여서 협업한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자율적으로 일하되, 일하는 환경을 환기하기 위한 일종의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각자의 집에서, 게더타운에서, 오피스에서, 바다 앞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을 바꾸면서 일에 임할 수 있다. 그러면서 확신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고,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겠다는.



07 각종 부대비용이 줄어든다.

직장인 점심값.. 너무 비싸요..

(이건 물론 얼마 전 사옥을 지은 회사의 말도 들어봐야겠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회사를 출퇴근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 출근하지 않으면 교통비도 아끼고 런치플레이션을 피해 집에서 밥을 해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택 근무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도 있다. 홈 오피스 공간 구성을 위한 각종 가구나 기기 등. 그러나 모니터, 거치대 등 대부분의 주요 기기는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기에, 인테리어에 대해 큰 욕심이 없다면 만족하며 홈오피스를 유지할 수 있다. (사실 테이블, 의자, 노트북만 있으면 일 되잖나..) 일부 회사는 재택 근무 환경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복지도 이미 진행하고 있다.



08 이슈 상황에서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태풍이나 폭염, 전염병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평소처럼 출퇴근하기란 쉽지 않다. 재택 근무가 디폴트라면 이런 이슈 상황에서 회사도, 개인도 빠르게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출퇴근이 디폴트인 상황에서 급하게 재택 근무로 전환되었다면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다소 재택 근무 찬양처럼 보이지만, 이제 재택 근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직 시 고려할 사항들 중에서도 재택 근무가 우선사항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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