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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퍼 May 16. 2022

휴양지에서 일이 돼?

강릉 워케이션 일기 3

감사하게도 이전 강릉 워케이션 일기 시즌이 사랑 받으면서, 다음탑 메인에 실렸다. 얏호

이후 주제로 '워케이션 전에 준비해야 할 것' 등을 구상하고 있으니 언제든 좋은 의견&문의가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D


다음 메인 감삼돠.. 아우.. 호들갑 떨고싶다..
브런치 인기글에도 떴네요!


이전 시즌이 궁금하다면

 → 강릉 워케이션 일기1 워케이션,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보러가기

→ 강릉 워케이션 일기2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일하기 보러가기





"워케이션? 휴가 간 거야?"

워케이션을 떠나온 이후로 이 말을 정말 정말 많이 들었다. 아직 워케이션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워케이션은 말 그대로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휴양하며 일하기'보다 '휴양지에서 일하기' 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그저 나의 새로운 거점 오피스로써 비일상적인 공간에 핀을 꽂은 것 뿐이다. 누군가 상상하는 것처럼 업무시간 중에 바다 수영을 하거나, 맛집 투어를 가거나 하지 않는다. 불가피할 경우에는 유연근무제를 이용해 업무시간을 잠시 off 해두는 방식을 활용한다.


그 이후에 꼭 따라오는 말이 하나 더 있다.

"거기서 일이 돼?"

결론부터 말하자면 된다. 엄청 된다.

그래서 정리해봤다. 워케이션에서도 왜 일이 잘 되는지.



어차피 집에 있어도 퇴근하면 누워있었다. 여기선 그저 퇴근하고 호텔 침대에 누워있다는 게 다를 뿐.


01 나는 애초에 바쁜 주간에 워케이션을 왔다

일종의 셀프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했)다. 워케이션을 떠나기 전에 이미 미팅이 많이 잡혀 있었고, 그렇기에 스태프 분들이 준비해주신 평일 투어 코스를 모두 수행하지 못했다.

일을 하는 방식은 워케이션이지만, 그 안의 워크-라이프 밸런스는 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보다 휴양의 개념이 더 강했다면 워케이션이 아니라 '배케이크' 정도로 이름 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10 to 7은 일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7 to~는 바다 앞에서 쉬는 시간'으로 잡았다. 워킹존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일을 대충한 건 절대 아니다.



02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우연히 참가자가 나 혼자였다 

MBTI E와 I를 왔다갔다 하는 나는 조금 걱정이었다. 워킹존에서 만나 커피 한 잔 하며 스몰토크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으나, 퇴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자거나 별을 보러 가자고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걱정도 했다.

그러나 그건 머쓱할 지경으로 아무 고민도 아니었다. 5월 둘째주 일로오션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이 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텔이 지리적으로도 도심과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스태프분들의 차량 없이는 어디도 이동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ㅋㅋㅋ 웃겨. 사실 안 웃겨) 그러니 혹시나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신청하기 전에 미리 참가자 수를 확인하자.



03 마크 주커버그의 회색 옷처럼, 불필요한 의사결정들이 사라진다

마크 주커버그는 일에 쏟아붓는 리소스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고 알려져 있다. 워케이션을 떠나와서 비로소 그 말이 어떤 건지 알아챘다.

아침에 일어나서 빨래를 할까, 환기를 할까, 어떤 커피를 마실까, 미팅 때 잠옷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어떤 옷이 적당할까, 집에 혼자 있는데 화장도 꼭 해야 할까, 집 앞 카페에 갈까,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오만 가지의 의사결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워케이션 장소에서는 극도로 단순하게 지낼 수 있다. 호텔 어매니티가 리필되고, 일할 때 입을 옷을 가져갔으니 그것만 입으면 되고, 룸클린을 맡기면 언제든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는 삶. 모래 알갱이처럼 빠져나가던 사소한 생각 노동의 밸브가 어느샌가 잠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04 주변에 친구, 지인, 애인, 가족이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퇴근 후 약속이 있는 날은 머리에 프로그래밍 된다. '칼퇴 칼퇴 칼퇴. 무족권 칼퇴'. 그러나 사실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업무 같은 경우 이렇게 무 잘리듯 업무가 끝나지 않기 마련이다. 좋은 아이디가 7시 1분에 생각이 날 수도, 8시에 생각이 날 수도, 다음 날 아침에 생각이 날 수도 있으나 약속이 생기면 초과되는 고 1분이 용납이 안 될 때가 있다. 조급함에 사로잡혀선.. (쯧)

그러나 이곳에서는 별다른 약속이 없어서 워킹위크 동안의 시간을 온전히 내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다. 저녁에 애인이랑 맛있는 걸 시켜 먹을까? 친구에게 우리 동네로 넘어와서 마실 가자고 할까? 같은 계획이 원천 차단되니 말 그대로 '일하는 나'와 '쉬는 나' 둘만 남는 것이다.



05 시간과 돈을 아껴쓰게 된다 

내가 진행한 일로오션 워케이션은 4박5일 프로그램이었다. 월요일 업무를 위해 일요일 오후부터 호텔 체크인 했으니, 5박 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온 셈이다. 호텔 숙박과 워킹존 인프라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50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내가 가난한 것일수도 있겠으나 주니어에겐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은 이 돈을 바닥에 던지는 것이나 다름 없게 느껴진다. (단순히 '쉬고 싶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색다른 환경에서 일을 더 잘해보고 싶어서' 떠나온 것이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자연히 평소보다 시간 사용의 밀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이런 밀도 있는 업무 경험이 다시 일상의 장소로 돌아와도 나름 유지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06 선례를 잘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는 특수 케이스일 수 있으나, 나는 같은 회사 크루분들은 물론이고 파트장님, 팀장님, 옆 파트 파트장님까지 모두 인스타 친구로 엮여있다. 그래서인가 '얘 놀러 갔구나'라는 인식이 심어지지 않도록 바지런히 움직였다. 많은 주니어들이 '요즘 Z세대들 자기만 알고 당돌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나 하나의 워케이션 사례가 이상한 선례처럼 남는 게 싫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나는 강릉에서 워케이션 한 일주일 동안 나름 분주하게 지냈다.

300명이 넘는 크루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그동안 다 해치우지 못했던 100장이 넘는 리서치 문서도 완성했으며, 새로운 유닛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기도 했다. 하루에 4-5개 미팅이 몰리는 날도 있었다. 물론 평소처럼 이슈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모든 업무들이 제대로 워킹했다는 것이 유의미하다.


다들 업무가 끝난 저녁 시간에 내가 화려한(?) 강릉 여행을 즐길 것이라 믿었으나,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일이 끝나면 호텔 방에 들어가서 치킨과 혼맥을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는 딱 그 정도의 텐션이 좋았던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수전의 '19호실'같은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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