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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 Aug 09. 2021

무기력해도 괜찮다고

인디펜던트 워커 실험기

요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겉으론 한량처럼 보였을진 몰라도 속에선 죄책감으로 마음을 졸였다.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은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다. 나는 나와 계속 싸우고 있었다. 그저 쉬고 싶다는 나와 안 된다고 만류하는 내가.


이 글을 쓰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어제는 모니터를 보며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글도 써지지 않았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앉아있었던 건, 키보드의 먼지를 보니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밀어 넣어서였다. 안 그럼 먼지가 곧 나에게도 쌓일 것만 같았다.


무소속 인간은 처음이라 무기력한 것이었을까. 예전엔 무얼 하냐 물으면 '대학생'이나 '직장인'처럼 심플하게 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취업준비생이 아니었고, 프리랜서라 말하기엔 아직 부족했다. 무소속이란 건 꽤 서글픈 것이었다. 지금의 나로 존중받는 게 아닌, 미래의 소속을 증명해야 했다.


아니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무기력해진 것이었을까. 근래 일과 쉼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었다. 퇴근할 땐 눈치 보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엔 계속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눈치를 본다. 낮에 쉬었으면 밤에 일하고, 밤에 쉬었으면 낮에 일하곤 했는데 쉰다는 게 죄같이 느껴졌다.


그러다 무기력과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란 영상을 봤다. 반년 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래도 괜찮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신호를 캐치하고, 내 몸과 마음의 속도를 따르라면서. 영상을 볼 땐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내 무기력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으니 초조한 건데 비현실적인 답이라 느껴졌다. 그런데 불안해질 때마다 그 영상이 생각났다. 무기력해도 괜찮다는 말을 실은 믿고 싶었나 보다.


휴대폰 전원을 가끔 끄는  좋다고 한다. 그래야 휴대폰 수명이 길어진다고. 무기력한 시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당장은 전원을 꺼버렸으니 답답하고 불안하겠지만, 멀리 봤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늘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 처음엔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 놀리곤 했는데, 나중엔 별말 없이 바로 괜찮다고 말해줄 걸 후회가 됐다. 뭐 어려운 말이라고 입 밖으로 제일 먼저 안 튀어나왔나 싶어서. 그 말 한마디가 친구에겐 간절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한테도 그래 보려 한다. 나는 자주 불안해하고, 쉽게 초조해하는 사람이니 자신에게 계속 말해줄 것이다.


무기력해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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