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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 Aug 11. 2021

왜 맨날 네이비색 옷만 입어?

날씬했다면 달랐을까

“저 언니는 왜 맨날 네이비색만 입어?”


친하지 않은 후배가 알아챌 정도로 네이비색 옷을 자주 입었다. 내 별명은 ‘네이비 인간’이었다. 시작은 카라티부터였다. 가슴 부분이 무지개로 둘러싸인 티셔츠였는데, 지금도 디자인이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자주 입었었다. 고등학교 생활복이었던 네이비색 후드티도 ‘네이비 인간’ 역사에 빠질 수 없다. 조회 시간이 끝난 후엔 매번 생활복으로 갈아입었다. 교복은 학교에 무사히 등교하기 위한 출입복에 불과했다. 대학생 땐 네이비색 카디건, 네이비색 원피스, 네이비색 코트를 돌려가며 입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네이비색에 지독한 애정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네이비색 옷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롯이 날씬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네이비색 옷을 고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옷을 고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편안함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날씬해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취향보다는 네이비색 같이 날씬해 보이는 어두운 옷을 고집하며 살아왔다. 화이트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매번 입고 나가는 옷은 네이비였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바지를 좋아했지만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릴 수 있는 치마를 입고 나갔다. 대충 입은 것 같아 보여도 하나같이 엄격한 검수를 통과한 옷이었다. 나는 외출 전날부터 옷을 미리 입어보며 매번 내 모습을 검수했다. 입고 싶은 옷은 매번 탈락했다. 가장 날씬해 보이는 옷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


결국엔 보정 속옷까지 손을 댔다.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수영복 모양의 일체형 속옷이었다. 보정 속옷을 입으면 압박감에 숨쉬기가 어려웠다. 웃기게도, 그땐 숨쉬기 어려운 게 뚱뚱해 보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연애했을 땐 매일 보정 속옷을 입었다. 한여름의 연애였다. 다들 더워서 니플 패치만 붙이고 다닐 때 나는 보정 속옷으로 몸을 조였다. 집에 돌아와선 매일 손빨래를 했다. 그렇게 날씬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은 옷의 색을 선택하는 것부터 보정 속옷을 입기까지 나의 행동을 지배했다.


나는 내 몸이 아닌 내 인생에서 살을 빼내고자 이 글을 썼다. 살을 빼서 날씬해지고 예뻐지겠다는 생각은 나를 수도 없이 괴롭게 했다. 모든 불행이 내가 날씬했다면 달랐을 것처럼 느껴졌었다. 이 글은 괴로운 욕망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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