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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 Aug 13. 2021

살로 시작하는 안부 인사

날씬했다면 달랐을까

씩씩했던 어린이

나의 MBTI 결과에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맨날 복도에서 뛰어다녔던 애가 어떻게 내향인일  있냐면서. 나는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이 없는 어린이였다. 복도에서 뛰어놀다가 교감실에 불려 가 차분해져야 한다며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단체 생활에도 빠지지 않았다. 학급 임원부터 방송부 활동, 구기종목 대표까지 두루두루 여러 활동을 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정말 좋아했었다.



어른들의 안부 인사가 싫어 도망치다

교회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매번 예배시간보다 먼저 가서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교회는 가족 다 같이 다녔는데, 소규모의 교회인지라 어른들을 마주칠 때면 매번 인사를 드렸다. 모르는 어른이어도 우리 가족을 통해서 나를 아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인사말로 쓰는 '안녕하세요'의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안녕하세요는 잘 지내셨어요와 같은 말인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내게 돌려주는 인사는 잘 지냈니와 같은 말이 아니었다.


"통통해졌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살 빠지면 이쁠 거야."

"대학 가면 살 빠진다."


그건 인사도, 칭찬도 아니었다. 나에 대한 외모 평가였다. 딱히 할 말이 없어 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살이 빠지면 더 보기 좋을 것 같은 순수한 마음에 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별생각 없이 한 말에 나는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 많이 뚱뚱한가?'

'내가 별로라는 건가?'

'지금은 내가 안 예쁘다는 건가?'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무례한 말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나의 외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후엔 어른들과 마주치는 게 싫어 교회에 뛰어들어갔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외부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에 안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교회는 내가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곳이 아닌, 내가 얼마나 뚱뚱한 존재인지 말해주는 곳이었으니까. 20대가 되고 교회를 다시 나가기 시작했는데, 친구에게 누군가 통통해진 것 같다며 말을 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넉살 좋게 받아치는 친구의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다. 나는 계속해서 교회에 뛰어들어갔다. 어른들이 급한 일 있냐 물으면 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는 그 안부 인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멀리.


명절날 친척으로부터 도망친 적도 있었다. 다들 내가 살쪘다는 이야기밖에 안 하니 시골에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선포했다. 그 말을 한 후엔 장롱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날 이후 엄마와 합의를 봤다. 명절날 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가 눈치껏 화제를 돌려주는 것으로. 요즘 명절날 잔소리 가격표도 있다고 하던데, 진작에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현금 부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에 도무지 무뎌지지가 않아서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나만 보면 살쪘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날씬해 보이는 어두운 색에 집착했던 것도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약속이 있는 날엔 옷장에서 옷을 죄다 꺼내 입어 봤다. 어떤 옷을 입어도 날씬해 보이지 않을 때면 당장이라도 약속을 취소해버리고 싶었다. 그런 내가 한심해 산더미처럼 쌓인 옷 사이에서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


친구와 술 한 잔 하고 산책을 하다가 친구 어머님과 마주친 적이 있다. 예전의 몸으로 다시 돌아간 거냐고, 야식 먹었으니 더 살찌겠다며 말을 거셨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이라면 굳은살이 생길 법도 한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말이 아팠다. 친구는 엄마가 본인 이야기를 하는 거라며 화제를 돌렸다. 요새 살이 찐 것 같아 무서운 마음에 체중계에 올라가지도, 평소에 입던 청바지도 안 입고 있었는데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살을 말하는 안부 인사에 면역력이 없다.



다정한 안부 인사를 해요

악한 사람이 한 말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하고 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악의 없이 뱉은 말에 화살은 방향을 잃는다. 화살은 머지않아 나를 향한다. 애초에 내가 날씬했다면 듣지 않았을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에겐 살쪘네 혹은 살 빠졌네 보다 훨씬 좋은 인사말들이 있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와 같은 낭만적이고 따뜻한 말들이. 인사는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의 안부 인사가 서로에게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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