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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Apr 28. 2020

버벌진트의 성찰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나는 가끔씩 '가장 좋아하는 래퍼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버벌진트는 그 때마다 빼 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빈지노 역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국 래퍼로 '버벌진트'를 뽑았다. 버벌진트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좋아보여', '충분히 예뻐'처럼 감성적인 '발라드 랩'이었고 방송 출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벌진트는 한국 힙합 역사에 있어 선구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존재다.



세련된 플로우를 자랑하는 그의 랩은 '킹 오브 플로우'라는 별명을 만들어냈다. 그는 다음절의 한국어로 라임을 구현하고자 고민했다. 그의 랩은 동시대 뮤지션들에게 준거점이 되었고, '라임 방법론'은 이후의 한국 힙합을 재정의하게 된다.  그의 가사처럼, '학교, 종교, 육교 거리던 이들이 차츰 머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명반 < 누명 >(2008)에서 자신의 역사적 성취를, 그리고 그에 따라붙는 누명을 서사화시켰다.


"힙합클럽에 가 공연들을 보며 들은 생각

고작 저게 다? 무열정 무질서한 낱말들의 나열"


-'1219 epiphany' 중


버벌진트는 분명히 역사를 바꿨고, 한국 힙합의 '만신전'에 올랐다. 그러나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도 했다. 2016년에는 음주운전에 적발되었고, 100일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5년 <쇼미더머니 4>에서는 블랙넛의 탈락 결정을 번복하면서 '번복진트'라는 오명을 얻었다. 시계추를 더 뒤로 돌려 2000년대로 가 보면,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 논쟁을 벌이기를 즐기는 '키보드 워리어'였다. 다른 이에 대한 여과없는 발언도 자주 했다. 한 인터뷰에서 배치기를 언급하면서 '배치기의 랩은 박자에게 진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 엠넷 <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에 출연해 배치기를 만난 버벌진트는 "당시의 나는 나대는 것을 좋아했다"며 솔직한 소회를 고백했다.


얼마 전, 버벌진트는 자신의 SNS에 디지털 성착취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N번방 피의자 중 한 사람이 자살하자, 가해자의 죽음을 환영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다시 정제된 글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그는 가해자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표현이 자칫, 사안 자체를 가볍게 느껴지도록 할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과거에 '이게 뭐가 문젠데?'하면서 저지른 수많은 폭력적인 또는 차별적인 행동들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특히 지금 한국에서 남자는 한순간 정신을 놓으면 어떤 악마가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되새기려고 합니다."라는 발언으로 문장을 마무리했다. 남성으로서 지니게 되는 상대적 강자성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버벌진트, 일관된 성찰.


버벌진트의 발언이 기사화되자, '음주운전자가 어떤 말을 얹을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이 뒤따랐다. 버벌진트 역시 여성혐오적인 가사를 쓰지 않았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과오를 저질렀다고 해서, 현재의 성찰이 무용한 것이 될 수 있는가? 버벌진트를 손가락질하는 이들 중에는, 그가 '페미 코인'을 탔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즉, 그가 페미니즘적 가치관을 받아들이면서 여성팬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년간 그의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본 결과, 나는 그러한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그의 변화는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벌진트는 꾸준히 반성과 성찰을 음악에 녹여 내왔다. 음주운전 이후 첫 방송 복귀였던 '쇼미더머니 8'에서도 노골적일 만큼 조심스러운 자세로 일관했다. 프로듀서들이 모여 랩을 할 때도 그는 가사에 '참회'를 담았다. 참회의 역사는 꾸준하다. 버벌진트는 음주운전에 적발된 이후 발표한 노래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음주 운전자는 잠재적 가해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탄핵안 가결과 촛불 정국 이후 어수선했던 2017년 1월, 버벌진트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노래를 내놓았다. 이 곡에서 그는 '세월호의 7시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논의를 확장했다.


"광장에 모인 모두가 그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아도 

그가 여성인 것을 걸고 넘어지는 순간부터 하나도 말 안 되는 거 작동 안 되는 거"

- '그것이 알고싶다' 중


당시 광장에서는 '저잣거리 아녀자', '강남 아줌마', '암탉' 등 본질을 흐리는 여성혐오적 발화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것은 시민의 분노를 수식하기 위한 단어로 온당하지 않았다. 버벌진트는 이 발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나쁜 년(Bad Year)'을 발표한 동료 산이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당시 같은 '브랜뉴 뮤직' 소속이었고, '쇼미더머니 4'에서는 함께 브랜뉴팀의 프로듀서로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발표한 '주로 산책했던 11월'에서는 '우아한 X'처럼 자신이 과거에 쓴 일부 노래를 부끄러워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자신이 과거에 만든 음악 역시 혐오적 표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과오를 등에 지고 산다. 그리고 1인분의 성찰을 통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동일하게 지니고 있다. '킹 오브 플로우'라고 불렸던 남자는 자신의 지난날을 대면하는 길을 택했다. 이제 그는 뮤지션으로서, 시민으로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혐오의 단어는 내뱉고 싶지 않아 나에겐 더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까. 

작년의 나완 다른 곳에 와 있으니까. We live We learn 

내가 다신 음주운전 안 하는 것처럼 사람은 바뀌는 거니까"


- '그것이 알고싶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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