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음악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지난 9월 22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을 새롭게 뽑았다. 2003년과 2012년에 이어, 8년 만의 개정이다. 1967년 잰 웨너와 랄프 글리슨에 의해 창간된 <롤링 스톤>은 대중음악과 문화를 다루는 매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위대한 앨범을 선정하는 순위는 언제나 음악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왔다. 이번 선정에는 스네일 메일의 린지 조던(Lindsey Jordan), 디 에지(The Edge),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등 현역 뮤지션과 음악 산업 관계자, 평론가 등 300명 이상이 참여했다.
"When will people start gettin' together again.
언제쯤 다시 사람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을까?
Are things really gettin' better, like the newspaper said.
신문이 말한 것처럼, 모든 것들이 좋아지고 있는걸까?"
- 'What's Happening Brother'(마빈 게이)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켰던 비틀즈의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가 24위로 내려갔다. 소울 뮤지션 마빈 게이(Marvin Gaye)의 < What's Going On >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71년 발표된 이 앨범에서 마빈 게이는 월남전과 공민권 운동, 환경 오염 등의 시대적 풍경을 개인의 삶과 일치시켰다. 롤링스톤은 '이 앨범 이후, 다른 흑인 뮤지션들은 그들의 예술에 대한 음악적, 정치적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자유를 느꼈다'고 1위 선정의 변을 밝혔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라는 구호로 점철된 2020년, 마빈 게이의 노래는 더욱 재조명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명반 < Pet Sounds >는 변함없이 2위를 지켰으며 조니 미첼의 < Blue >, 스티비 원더의 < Songs In The Key Of Life >, 비틀즈의 < The Beatles >가 그 뒤를 이었다.
바뀐 순위에서는 흑인 음악과 여성 뮤지션의 강세가 돋보인다. 켄드릭 라마의 < To Pimp A Buttefly >(2015),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10)는 나란히 20위권에 올랐다. 뉴욕의 왕을 겨뤘던 래퍼 제이지와 나스는 각자의 대표작인 < The Blueprint >(제이지)와 < Illmatic >(나스)를 50위권에 입성시켰다. 많은 힙합 앨범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10위에 오른 로린 힐(Lauryn Hill)의 <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은 네오 소울과 힙합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앨범이다. 이 앨범은 미국 사회의 흑인 여성의 삶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네오 소울 아티스트 디안젤로의 < Voodoo >는 무려 453계단이나 오르며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 비욘세의 < Lemonade >(2016)는 데이비드 보위, 지미 헨드릭스 같은 거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시대 정신을 반영한 결과다.
한편 이번 개정판을 두고 '록에 대한 사망 선고'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전이라고 평가받던 록 음반들은 대폭 하락하거나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록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발표된 앨범의 비중이 73.9%에서 60% 정도로 줄어들었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도어즈(The Doors), U2,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같은 전설들도 예외는 없었다. U2의 명반 < The Joshua Tree >이 기존 27위에서 135위로 하락한 것은 상징적이다. 롤링스톤이 지금까지 U2 등 일부 록 뮤지션들에 대한 '편애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생각하면 급진적인 변화다.
과연 다양성은 보장되었나?
록 음악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롤링 스톤은 미국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고, 실제로 영국 록 음악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90년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밴드였던 오아시스도 2집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 한 장만을 올렸을 뿐이다. 역시 브릿팝의 주역이었던 블러(Blur), 펄프(Pulp)는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2020년에 개정된 순위에서는 블러의 대표작 < Parklife >가 438위, 펄프의 < Different Class >가 162위에 올랐다. 오아시스는 데뷔 앨범 < Definitely Maybe >을 순위에 추가했다. 얼터너티브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도 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너바나의 < Nevermind >는 기존 17위에서 6위로 순위가 상승했다. 1990년대의 밴드들이 최근의 뮤지션들에게까지 미친 영향력을 고려한 셈이다.
롤링 스톤은 음악성과 역사적 영향력, 정치성 등을 두루 고려했다. 그러나 논란은 분분하다. 드레이크(Drake)의 < Take Care >는 래퍼 투팍(2Pac)의 명반 < All Eyez On Me >를 한참 앞선 95위에 올랐다. 피비 알앤비의 시초 격인 앨범이지만, 과연 이것이 투팍의 성취를 한참 웃도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2000년대 최고의 인디 록 앨범으로 손꼽힌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데뷔작 < Funeral >은 151위에서 500위로 하락한 것도 록 팬들에게 석연치 않은 결정이다. (나도 화났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 등 4개의 본상을 모두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는 397위로 진입했다. 그러나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 음울한 캐릭터의 자양분이 되었던 그라임스(Grimes),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FKA Twigs 등은 아예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흑인음악이 예전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나, 일렉트로니카나 재즈 등 충분히 대표되지 못한 장르들이 있다.
리스너들의 취향이 어느 때보다 분화된 시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위대한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순위 자체의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순위가 내려갔다고 해서 위대하지 않은 앨범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롤링 스톤의 변화는 현 시대의 흐름을 가늠하는 풍향계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들이 무엇에 대하여 '눈치'를 보았느냐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