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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Nov 09. 2020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4일 간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독교식의 4일장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87년의 고된 삶을 마치고 자연으로, 또 당신께서 섬기던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셨다.


열두살 때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때는 어른들을 따라다니기에 바빴다. 슬픔에 엉엉 울었지만, 어른이 간식을 사 주신다고 하면 '아싸' 하고 부지런히 따라가는, 뭐 그런 나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치뤄본 장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입관식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났고, 화장터로 떠나는 그의 관을 들었다. 모든 것이 생경한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앞에 가까이 계셨지만, 동시에 계시지 않았다.


우리는 상복을 입고, 수많은 문상객들을 마주해야 했다. 잘 사셨다는 증거다. 먼 길을 달려오신 지인들, '노구'를 이끌고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퇴임 목사, 밀린 근황을 나누는 누구누구의 친구들. 심지어 엄마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까지. 장례는 죽음을 기리는 의식이지만, 동시에 살아온 날에 대한 헌사다. 웃음과 울음,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순간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작은 거인'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았다. 신앙, 진보적 신념, 자유 의지, 정의관에 충실한 삶을 사셨고, 할머니와 반 세기 이상의 세월을 해로하셨다. 수개월 넘게 고통 받으셨지만, 마지막 날에는 편안히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서는 '호상'이라 할 일이어서일까. 장례식장의 분위기도 생각보다 좋았다. 


엄마 : 야는 제 첫째 아들이고요 현파!

어른 A : 아, 도향이 아들!

나 : 하하 안녕하세요 (머쓱)


외할아버지가 쇠약해지시는 동안, 할머니는 자신의 시간과 신경을 오롯이 할아버지께 쏟았다. 나는 예전부터 요양이 개인의 몫으로 집중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의 얘기가 되니까 체감되는 무게가 달랐다. 이것은 한 사람의 노인이 해낼 수 있는 돌봄 노동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눈을 감으셨다. 떠나시기 전 할아버지께서는 임종 예배를 진행하시던 작은할아버지의 손을 들어 할머니를 가리키셨다고 한다. "이 사람을 잘 부탁해"라는 뜻이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의연하고 강한 분임을 잘 안다. 리더에 어울리는 어른이다. 교회 공동체를 움직이는 또 다른 구심점이셨다. 할머니는 빈소에서 만나는 분들께 '우리는 호상이라 괜찮아!', '목사님 편하게 잘 가셨어요' 웃으셨다. 우는 문상객이 있으면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셨다.


그러나 장례를 마칠 때 즈음이 되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며 무너지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아버지 수고 너무 많으셨어요'라는 엄마와 남매들의 울음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수고 많으셨어요'라는 그 흔한 말이 왜 그렇게 아팠을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라는 누군가의 유언을 떠올려 본다. 할아버지는 훌륭한 삶을 살고 떠나셨다. 그러나 아무리 호상이라고 해도,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 해도 슬픔이 옅어질 수 없다.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았고, 목사님께서 믿으셨던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할아버지를 엄하게 키우셨다는 고조할아버지도 만나셨겠고, 먼저 떠난 우리 아빠 이서방도 만나셨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에게 이별은 이별이다. 사실,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을까?


할머니 우실 때, 엄마 우실 때 옆에서 안아 드렸다. 나는 너무 어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구나. 그저 떠난 분의 발자국을 기억하면서, 또 남은 사람들끼리 원없이 사랑하면서 걸어가자.  할머니한테 맛 좋은 커피도 많이 사 드려야지. 라떼도 좋고, 아메리카노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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