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날

by ivory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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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온단다. 우산 가져가그라.


심퉁이 난 못나니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문을 쾅 열고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겨우 집에서 십여 미터는 왔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돌아가 가지고 와도 늦지는 않을낀대 괜히 자존심이 부추긴다. 흥. 냅다 뛰었다. 집을 뒤로하고.


비는 점점 기세를 더해 이제는 하늘에 빈자리보다 빗방울 빼곡히 들어선 자리가 더 많을 지경이다. 흠빡 젖은 채로 갔던 길을 돌아오고 있자니 괜히 억울한 마음에 잠겨 들었다. 신발 속까지 젖어 질퍽거리는 소리가 다리를 타고 몸을 울리는데 짜증 낼 기운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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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 오나갈 때 맘 다르다더니 지가 딱 그 꼴이라, 혹시나 우산 가지고 마중 나오진 않았을까 기대도 잠깐 해 봤지만 그리 살가운 가족도 아닌 것 같구 그렇게 심술을 내곤 나갔으니 저라도 그러긴 싫겠다 싶어 터덜터덜하는 중에 비가 그쳤다. 차라리 계속 오기나 하지 괜히 더 찝찝하그로.


집 앞에서 잠시 멈춰서 머리서 물을 짜내고 옷을 털었다. 신발도 뒤집으니 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녀왔어- 하는데 문득 젖어있는 다른 신발이 보였다.


- 어디 갔다 오셨능가.


하고 물어보니 미련스럽게 비를 다 맞고 왔느냐며 혀를 끌끌 차는데 솔직하지 못한 모양새가 집안 내력인가, 그래 내사 닮아도 누굴 닮았겠누 했다. 대충 씻어내고는 따뜻한 차 두 잔을 끓여 한 잔에는 심퉁을 녹이고 다른 한 잔에는 서운함을 녹였다. 내일은 날이 맑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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