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의 90년대.

by ivorybear
000029.JPG


기억의 90년대는 넉넉하진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던, 없는 것에 대한 허전함을 미처 체감하지 못하던 그런 여상스러운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막연한 즐거움뿐이었지요. 그 시절에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선 가요톱텐 시간을 기다리거나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법 테이프라도 사기엔 미묘하게 모자란 용돈에, 워크맨 비슷한 것도 없었고, 공테이프에 녹음하는 일은 초등학생에겐 부담스럽게 부지런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징징대기보단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실 뭐 징징거려 봤자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을 수도 있지요.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하루에 두 번 세 번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온종일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컴퓨터가 생기고 인터넷 고속선이 깔리고 음악을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 들을 수 있게 된 뒤로 그 시절만큼 음악 듣는 일이 즐겁지 않게 된 것은 그야말로 얄팍구리한 인간 간사함의 소치이지만, 그래도 가끔, 막무가내로 기다려 봅니다. 첫 구절에 마음이 탁 쏘듯 튀어 오르던 그 순간을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