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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Apr 05. 2018

나의 첫 번째 자전거

소년부터 청년까지 이재명의 자전거 이야기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10화│나의 첫 번째 자전거│©안다연

     

집에 오니 아버지가 자전거 샀다고 한다. 참말로 기쁘다.
1980-03-28

    

생애 첫 자전거를 품에 안게 된 날의 기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촌 병국이 자전거를 얻어 타는 게 고작이었던 내게 생각지도 못 했던 자전거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날로 자전거는 제 독차지가 됐습니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차비가 없어도 어디든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자전거를 든든한 친구 삼아 성남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자전거 갖다 줬다. 아침에 탔는데 기분이 좋았다. 광주 산업도로, 판교 등등해서 한참 돌다가 왔다.
1980-03-29



자전거는 현실의 한계에 발이 묶여 있던 내게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목에는 돈이라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는 달랐습니다. 오르막길은 쉬엄쉬엄 올라가면 됐고, 길이 끊어지면 자전거를 메고 가면 그만이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화가 울컥 치밀 때면 힘차게 페달을 밟았습니다. 스치는 바람이 가슴을 뻥 하고 시원하게 뚫어줬습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안동의 푸른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느끼고 싶어 무던히도 쏘다녔습니다. 그렇게 자연을 찾아다니다 발견하게 된 나만의 아지트가 바로 판교였습니다. 판교에서 물고기와 조개를 잡는 이들을 넋 없이 구경하다보면 어느 새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1982-05-29│이재명의 일기




답답함을 달래고 싶었던 어느 날, 남한산성 동문에서 남문으로 신나게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별안간 브레이크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자전거를 곧게 세우고 한참동안 쉬게 하면서 내 마음도 함께 달랬습니다. 그렇게 자전거는 생애 처음으로 무한한 애착을 쏟는 나만의 보물이 됐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이 나만의 자전거일 수는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번갈아 써야만 했으니까요. 자전거는 하루가 다르게 낡아져 갔습니다. 자전거를 나만큼 귀하게 다루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성 들여 자전거를 직접 고쳐보기도 하고, 없는 돈에 자전거포로 가져가 수리를 받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타고 나갔더니 순 고물 다 됐다. 
1980-05-21



그렇게 자전거와 정을 쌓은지 두 달 쯤 됐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다시 되팔아버린다며 가지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애초에 아버지께서 사온 물건이었기때문입니다. 나는 차오르는 상실감을 게워내기 위해 내겐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자전거는 하루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미 낡아서 제 값을 받지 못 하게 되자 아버지께서 다시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자전거를 잘 관리하라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나는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기쁘기만 했습니다.



오늘 아버지가 자전거 찾아왔다. 가져와선 닦으라고 난리다. 
1980-05-28     




몇 해가 흘렀습니다. 대학 입시 결과를 기다리던 때에도 여전히 나는 같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로 길을 건너다 택시에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해 한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택시회사의 보험사에서 치료비를 모두 지원했고 보상금까지 받았습니다. 천만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공장에서 팔을 다쳤을 때처럼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제 때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더라면... 그토록 갈망하던 대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982-01-31│이재명의 일기

   


큰 사고를 겪고도 자전거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대학교 때는 18일 동안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했고, 두 아들이 생기고 나서는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싶어 주말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두 아들과 탄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중 점심으로 짜장면을 배달 시켜 먹던 모습




나는 지금도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방치돼 있는 낡은 자전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묶여 있는 채 낡아가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곳에서 귀하게 쓰이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나의 첫 번째 자전거’를 타고 안전한 환경에서 신나게 달리며 건강하게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푸른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모습,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아마도 나의 첫 자전거와 함께 보냈던 그때가 떠올라서겠지요.






11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에서는 어려운 대학 공부와 씨름하던 이재명의 기장 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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