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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Apr 19. 2018

먹고 싶을 때마다 과일을 먹는 꿈

시장통에 버려진 과일만 먹어야 했던 이재명의 이야기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12화│먹고 싶을 때마다 과일을 먹는 꿈│©안다연


우리 가족은 모두 과일을 좋아합니다. 신선한 제철 과일처럼 맛있는 먹거리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선한 과일을 맛보는 건 특별한 날에나 가능했습니다. 당장 밥 먹고살기도 어려운 시절, 과일은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삿날이 좋았습니다. 제삿날이면 서울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삼촌이 제수용 과일을 싸 들고 오셨던 까닭입니다. 삼촌이 가져온 과일은 흠 하나 없이 신선했습니다. 그렇게 보기 좋은 과일이 맛도 좋았습니다.   

    

집에 오니 삼촌이 제사 지내러 오셨다. 제사 지내고 과일 좀 먹고 잤다.
1979-12-26
     

어느 날엔가는 아무리 기다려도 삼촌이 오시지 않아서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께서 과일을 사오셨습니다. 삼촌은 제사가 다 끝난 다음에야 헐레벌떡 들어오셨습니다. 졸다가 버스 정류장을 놓쳐서 종점까지 갔다 온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던지, 가슴에 품고 온 과일 담긴 봉투가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습니다.


1982-02-17│이재명의 일기



모든 날이 특별한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기억 속 과일에는 쓴맛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상대원 시장 청소부였던 아버지는 쓰레기를 치우다가 발견한 썩은 과일을 자주 주워 오셨습니다. 없는 형편이지만 가족들에게 과일을 먹이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알았지만 남들은 먹지 않는 썩은 과일을 먹는다는 사실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1980-01-09│이재명의 일기


   

물론 아주 먹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대개는 시장 과일가게에서 내다 버린 과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끝물인지라 더 이상 상품가치가 없어 팔 수 없는 과일들이었죠. 그런 과일들을 한밤중에 가져오는 아버지였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기에 그 과일들은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했습니다. 썩거나 물러진 부분을 도려내면서 말입니다.

      

한 번은 아버지를 도와 쓰레기를 치우러 나갔다가 아버지께서 쓰레기 더미에서 토마토를 주워 먹는 것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심히 괴로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배를 건네셨습니다. 받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받았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들어와서 배를 깎아 먹었다. 특별한 맛이 없었다. 그냥 삼키는 것이다.
1980-05-31

     

매형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매형은 리어카를 놓고 참외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장사 수완이 영 없어서 매일 참외가 남았습니다. 누나는 팔다 남은 참외들을 우리 집에 가져다 주곤 했습니다. 참외는 맛이 좋았지만 받아먹는 속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매형이 또 참외를 못 팔았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삼켜야 했으니까요.


아침에 누나가 참외 먹으라고 주는 걸 안 먹겠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누나에겐 미안한 일이다.
1980-06-17


아버지가 주워온 썩은 과일과 매형이 팔다 남은 참외. 도저히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아픔이 배어 있는 과일입니다. 아버지가 주워온 상한 과일을 못 먹겠다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매형이 팔다 남은 과일을 먹는 일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과일은 나의 로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나의 꿈은 냉장고에 과일을 잔뜩 넣어 놓고 먹고 싶을 때 언제든 과일을 꺼내먹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내 돈으로 신선한 과일을 사서 냉장고를 채울 수 있게 되자 후련함과 함께 과거의 서러움이 잔뜩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과일 먹는 꿈을 실현한 사람이 나 혼자만이 되지 않길 바랐습니다. 어느 누구나 먹고 싶을 때 신선한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 그것은 나의 또 다른 꿈이 되었습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과일을 사 먹었어요!"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받은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삼촌이 맛난 과일을 들고 오시는 명절만 기다렸던 소년 이재명처럼, 이 학생이 청년배당 덕에 온 가족과 함께 따뜻한 명절을 보내며 과일을 먹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마치 과일 하나 맘 편히 먹지 못했던 어린 날의 나 자신에게 지금의 내가 보내는 선물 같았습니다.

         

2016-07-08│이재명이 한 청년에게 받은 자필 편지


인간은 평등하고, 인간은 최소한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받아야 하고, 또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시장님은 늘 그러도록 힘써주시기에 성남시민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2017-10-18│청년에게 과일을 선물하자는 취지의 <비타민을 드립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이재명의 응원 메시지




13화  <재정에 밝아 '재명'인가>에서는 어릴 적부터 한푼 두푼 아끼다가 셈에 밝아진 이재명의 기장 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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