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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Apr 26. 2018

재정에 밝아 '재명'인가

셈에 밝아질 수밖에 없었던 소년 이재명의 이야기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13화│재정에 밝아 '재명'인가│©안다연



나의 이름 '재명'은 있을 재(在)에 밝을 명(明)을 씁니다. 그러나 나의 생은 그 이름에 재물 재(財)를 쓰는 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었을 만큼 나를 셈에 밝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이끌었습니다. 나는 돈 계산이 빠릅니다. 돈의 귀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안동 산골짜기에 살던 꼬마 시절부터 우리집에서는 돈 구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과자와 빵, 음료수 같은 간식을 사먹을 생각은 당연히 하지도 못했지요. 소풍날 사이다 한 병씩 사간 게 전부였을 겁니다.



다른 애들은 소풍 간다고 빵 사고 과자 사고 음료수 샀지마는 나는 100원 가지고 셋이 나눠 가져야 했다. 난 40원, 재옥·재문이는 30원씩. 사이다 한 병 사면 딱 맞는 돈이다.
1980-01-06
  
   

성남으로 이사온 열세 살, 공장에 취업해 돈벌이 전선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크나큰 대가를 치르고 버는 돈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뼈 저리게 새겨야만 했던 돈의 가치였습니다. 10원, 20원도 너무나 큰돈이었기에 함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시내버스 요금이 60원에서 80원으로 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회사 갔다 와서 걸어갔고 어제도 걸어왔다.
1979-12-20  



나는 어느 공장에서 품삯 얼마를 받는지를 일기장에 빼곡히 기록하곤 했습니다. 고무공장에서 1만 8천원을 받던 시절, 쌀 한 가마가 3만 5천원이었습니다. 그 나이 치고는 제법 물가에 감각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도 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절로 귀가 기울여졌습니다. 정기적금 이자가 24%였던 시절이었습니다.



1980-01-12│이재명의 일기


   

공장 동료들 중에는 버는 대로 다 써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아버지께 월급을 통째로 갖다 드리고 약간의 용돈을 받아서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수가 생겼습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자 학원비에 책값, 버스비까지 들어갈 돈이 태산이었습니다. 나는 돈 계산에 더 밝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없는 예산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공부만은 반드시 하고 싶었으니까요.




1982-01-31│이재명의 일기



학비는 물론 다달이 20만원을 받는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서 처음 돈을 받던 순간은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20만원을 모두 1000원짜리로 받아왔습니다. 조금씩 아껴 쓰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두툼한 돈다발 한번 만져보고 싶어서였을까요.

                 

           

1982-03-23│이재명의 일기


      

그렇지만 아무래도 돈을 집에 두고 다니려니 영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달에는 친구들과 함께 은행에 가 난생처음으로 저금통장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딴에는 꽤나 역사적인 순간이었지요.    



1982-03-23│이재명의 일기


                    

공장 시절보다야 사정이 나아지긴 했어도 나는 여전히 돈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깨끗한 새 책이 탐날 때도 있었으나 누군가 이미 공부해놓은 흔적도 내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 교재는 모두 청계천 헌책방에서 마련했습니다. 병영 집체교육 때 입을 운동복도 시장에서 샀습니다. 학교에서 파는 것이 더 품질이 좋았지만 값을 두 배나 치를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서였죠.



교련복을 교복처럼 날마다 입고 다녔던 대학 시절의 이재명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남에서 흑석동까지 길고 긴 통학시간 중 조금이라도 더 앉아 가기 위해 버스비 10원을 더 쓰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회수권 값이 갑자기 인상되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근로 청소년 할인을 시행한 것에 대해서는 백번 잘한 일이라며 기뻐했습니다. 1년 전까지만해도 바로 나의 일이었으니까요.



회수권을 사니 한심할 만큼 부담이 많이 간다. 개당 85원. 꽉 찬 가계에 또 한 차례 바람이 불겠구나.
하지만 근로 청소년 할인을 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인 것 같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1982-05-30     



살림살이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려면 어딘가에서는 덜어내고 어딘가에는 보태야 합니다. 성남시장으로 지내는 동안 살림살이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것은 그 과정이 우리 사회를 더 공정하고 균형 있게 만들 것이라는 뚜렷한 신념 때문이었지요. 8년 동안 그 많던 빚을 다 갚아나갈 수 있어서, 그리고 쓸데 없는 낭비를 줄여 그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그 덕에 우리 시민들이 성남에 산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돼서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정부의 재정이란 주권자인 국민이 대리인인 정치인에게 쥐어준 권한의 일부입니다. 그 어떤 돈보다도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입니다. 그 권한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또다시 숨은 그림을 찾듯, 퍼즐 조각을 맞추듯 고심을 거듭하며 가장 효율적인 지점을 찾아 이리저리 재정을 분배하게 될 겁니다. 돈의 귀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까닭이지요.






14화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에서는 사랑과 원망이 공존했던 아버지를 향한 이재명의 기장 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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