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명 Apr 12. 2018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어려운 대학 공부와 씨름하던 이재명의 이야기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11화│모르는 게 너무 많아│©안다연



대학생이 되자마자 지난 6년이 가져다주는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나는 국민학교를 마친 후 고입 검정고시, 대입 검정고시, 그리고 학력고사라는 단 세 번의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보편적인 교육 과정을 밟았다면 최소 6년이 걸렸을 일입니다. 그러나 내겐 그럴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으로서의 6년이 생략된 셈이었습니다.



이재명의 대입 학력고사 수험표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주는 중앙대의 학과 중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법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정작 법학을 배우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한자였습니다. 한문이 예비고사에 포함돼 있긴 했지만 워낙 배점이 낮았던 까닭에 포기했던 과목입니다. 그런데 법대 수업은 한자를 모르고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대학교 첫 수업을 마치고 청계천 헌책방을 돌면서 경제학원론과 법학개론 교재를 마련했던 날입니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쳐보니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한자로 뒤덮힌 법학과 수업│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때마침 법대생 된 처남 덕 좀 보자며 매형이 찾아왔습니다. 신원보증서를 써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자를 모르는 나는 도와줄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보증서 작성은 아버지께서 대신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지요. 



1982-03-20│이재명의 일기



아버지는 이런 내가 딱했던 모양인지 쓸만한 옥편을 하나 사다주셨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천자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한자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일기를 쓸 때도 최대한 한자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쓴다기 보다는 거의 따라그리는 수준이었지만 말입니다.



1982-06-01│이재명의 일기


  


두 번째 고민거리는 엉망진창인 글씨체였습니다. 시험 답안지에 쓰인 글씨체가 좋아야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국어책처럼 반듯하게 글씨를 쓰는 경필쓰기 같은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맞춤법도 자주 틀렸습니다. 부끄럽게도 ‘얘기’라고 써야할 자리에 ‘예기’라고 쓰고 있었음을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1982-03-02│'예기하다'│이재명의 일기

                            


1982-07-04│'얘기하다'│이재명의 일기




세 번째 어려움은 전혀 대학공부 하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신입생들은 고등학교 동문 선배들의 도움으로 공부하는 법과 답안지 쓰는 법을 배우고 시험 족보도 얻던데, 검정고시 출신인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선배는 없었습니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법학 시험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답을 쓰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글씨체와 한자가 매우 신경 쓰였습니다. 글씨도 못 쓰는데 책상 바닥은 왜 그리도 우둘투둘 한지요. 엉뚱한 데 신경을 쏟다 보니 실수가 거듭됐습니다. 시험지 뒷면에 답을 써도 된다는 것도 모른 채 허둥지둥 앞면에 답안을 모두 채우고 난 후에야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손 쓸 수 없어 시험장에서 일찍 나와 버렸습니다. 전공과목인 법학개론 시험을 망친 탓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1982-04-19│이재명의 일기


     


이 어려움들은 사법고시를 마칠 때까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교복 한번 못 입어보고 중고등학교를 건너뛴 신세가 처량해서 대학만큼은 시간을 좀 가지고 공부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어려운 공부를 따라잡느라 생각처럼 즐겁기만 한 대학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생략된 6년을 뒤늦게 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대학시절은 어설피 엮여 있었던 나의 빈 틈을 채우는 과정이 됐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곤 합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지만 끝내 그 틈을 메꿔낸 대학시절 말입니다.






12화  <먹고싶을 때마다 과일을 먹는 꿈>에서는 시장통에 버려진 과일만 먹어야 했던 이재명의 기장 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전 10화 나의 첫 번째 자전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