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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Feb 01. 2018

40년 묵은 일기장을 펼치며

이재명의 일기를 건네받다

여섯 권의 낡은 일기장을 건네받았습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성찰과 희망을 찾아낸 이재명의 이야기가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일기는 그가 소년이던 열여섯부터 청년이던 스물여섯까지 약 10년간의 기록입니다. 일기는 그가 살던 성남을 배경으로 하여 가장 괴롭고 힘들던 시절에 집중적으로 쓰였습니다.

1979-1988 이재명의 일기장

소년 이재명은 고향인 안동에서 국민학교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성남으로 이사했습니다. 3학년 때 홀연히 집을 떠났던 아버지로부터 성남으로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성남이라는 지명을 말씀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 변두리의 어느 곳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당시의 성남은 도시 빈민들의 거주지를 강제 철거하면서 그들이 이주해 생겨난 지역이었습니다. 이재명의 가족은 이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상대원 시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고물을 주워다 팔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 시장 변소를 지키며 요금을 받는 일을 했습니다.


그를 포함한 일곱 남매는 모두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재명이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안동에서 국민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것이 동생들에 비해서는 운 좋은 형편이라고나 할까요. 소년 이재명은 아직 법적으로 취직할 수 없는 어린 나이였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가며 공장에 다닙니다. 


소년 이재명의 일기 곳곳에는 고통스러움이 묻어나 있습니다. 청소부인 아버지는 새벽 3시부터 열여섯 살 아들을 깨웁니다. 같이 쓰레기를 치우러 가자는 것입니다. 소년 이재명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작업복을 입고 아버지의 리어카를 밀며 새벽부터 일을 합니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비를 맞으며 폐지를 줍다가 등굣길의 교복 입은 여학생과 눈이 마주칠 때면 수치스러움을 견디며 한참을 멈춰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일기는 1979년에 쓰였습니다. 이재명은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직장에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 끝에 공장을 그만두면서까지 공부에 몰두했지만,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현실에 또 한 번 좌절하고 맙니다. 결국 소년공 생활이 다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를 이끌어주거나 응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뀐 것이라고는 몇 해 전 프레스 기계에 눌려 다친 팔이 점점 뒤틀리면서 극심한 통증이 더해진다는 것과 동료들의 비웃음이 늘어간다는 것뿐이었죠.

이재명의 검정고시 수험표 사진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습니다. 마지막 일기가 쓰인 1989년의 이재명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판검사가 될 수 있을 만큼 좋은 성적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남의 가난하고 억울한 노동자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겠노라며 결심을 다잡는 글로 일기는 끝을 맺고 있습니다.

1988 이재명의 일기

한 사람의 존재는 살아온 경험의 축적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며, 짐이 되기도 합니다. 살아온 궤적이 살아갈 방향이 되기도 하며,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삶을 이끌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 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소년공 이재명은 실수가 많고, 조급하고,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매일 스스로를 성찰하는 일기를 씁니다. 진정성과 절실함을 담아서 말입니다.


40년 세월의 더께가 앉아 누렇게 바래버린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듯한 그의 현실을 하루 단위로 읽어 내려가는 일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불우한 소년의 분노와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기 속의 그의 시간은 몹시도 고통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느새 의지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극복을 다짐합니다.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꿈을 말합니다. 미래를 써내려 갑니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그가 거친 성찰의 과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1979-1988 이재명의 일기장

앞으로 15주 동안 연재되는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는 여섯 권 분량의 일기장에서 가장 진솔한 기록만을 꺼내 정성스럽게 추려낸 이야기입니다. 스토리텔러 조정미가 여러분을 대신하여 소년공 이재명의 일기를 읽고 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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