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아, 네가 필요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내면과 감정선을 표현 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섬세하고 예민한 부분이기에 자칫 잘못하단 큰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적어도 이 영화는 아니다. 왜 이 영화는 아닌 걸까 하고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기자기하고 존재감 확실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등장과 픽사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작화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까지. 그 어떤 애니메이션 영화와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다.
기쁨 이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과 캐릭터들의 케미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서 나오는 에피소드들, 핑퐁이와의 이별이라던지 가족 간의 갈등이라던지 등에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사실 라일리에게 많은 몰입이 됐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이사를 참 많이 했다. 같은 지역에서 다른 동네로 혹은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하면서 그 당시에 나는 많은걸 잃는다고만 생각을 했다.
친한 친구들과 친숙한 동네 그리고 이웃들과의 이별. 떠나면 다시는 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러한 과정들을 몇 번 거치고,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결론적으로 내가 잃은 것은 없다. 떠남을 통해 또 슬픔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잃었다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했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동네와 또 새로운 이웃들까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내 안에 존재하는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다른 많은 감정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예전에는 무조건 기쁨이 최우선인 줄 알았다. 기뻐야 하고 행복해야 하고 항상 좋아야 하고 그게 가장 중요한 줄로만 알던 때가 있었다. 한 살 두 살 점차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기쁨이 아니라는 것, 정작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기쁨이 아닌 슬픔이라는 것. 우리는 많이 슬퍼봐야 한다. 더 많이 울어봐야 하고 더 많이 아파봐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이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슬픔과 아픔의 기준이 같지는 않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슬픔과 아픔을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은 아끼고 따뜻한 포옹과 함께 '정말 슬프겠구나' 이 한마디 말이면 된다. 누군가가 슬픔에 빠졌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위로하고 안아주는 순간, 그 둘은 함께 성숙해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어른들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많이들 말을 한다. 공감한다. 많은 슬픔을 품에 간직한 채 살아온 사람들에게 작은 울림과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속작을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 영화, 정말 오랜만이다.
끝으로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의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이 생각이 나 이렇게 적어본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