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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Feb 17. 2016

버드맨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빛난다.'


'버드맨'은 이 '작품'은 키튼의 키튼에 의한 키튼을 위한 영화이다. 오로지 '마이클  키튼'이라는 배우를 만났을 때 비로소 '리건'은 버드맨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세련되고 매끄러운 연출의 집합체라고 말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연출이 완벽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심장박동처럼 들 리우는 드럼 비트의 쿵쾅거림, 독보적인 촬영기법. 음악도 음악이지만 원테이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영화들을 이전에 몇 번 접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테이크로 이어지는듯한 느낌을 담은 영화는 버드맨이 유일하지 싶다. 적어도 내가 본 작품 중에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강하고 진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일절 받을 수 없는! 이런 매려적인 영화가 세상에 나오다니, 그저 기쁠 뿐이다. 

다른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지만 특히나 이 버드맨은 두 번보고 세 번째 봤을 때, 비로소 이 영화의 많은 것들이 와 닿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 마이클 키튼과 배트맨 그리고 리건 톰슨과 버드맨. 흔들리는 내면을 또 다른 자아인 버드맨의 내레이션으로 풀어내는 방법 또한 굉장히 인상적인데 119분이란 시간이 이렇게 짧았나 싶었다. 그의 인생을 그려내는 시간이라고 하기엔 정말 아쉽게 느껴졌던 119분. 그러나 그 어떤 119분보다도 알 찼다고 말하고 싶다.

벌거벗은 키튼이 브로드웨이를 거니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 올랐고 그 뒤를 이어 훗날 내 미래의 모습이 보임과 동시에 많은 이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기묘한 감정들이 속에서  들끓곤 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지금의 그를 보여주는 무대의상도, 과거의 그를 빛나게 해주었던 버드맨 슈트도 아닌 알몸으로 말한다.

'난 왜 이렇지? 난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하지?' 연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준 그 대목은 정말이지.. 오래오래 머릿속에 아니 가슴속에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나 자신의 모습. 내 존재를 증명하는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임을 알게 해 준 '버드맨'. 인생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기에 인생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허나 타인에게만 의존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대는 삶에 익숙해지면 혼자 일어서는 건 너무나 힘이 든다.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만 눈을 돌리다 보면 정작 소중한 것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나는 비로소 '나' 일 때 존재한다. 절대로 잊지 말자.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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