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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Aug 16. 2016

부산행

'정부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빠르다. 그리고 잘 다듬어졌다. 영화는 실제 ktx처럼 빠른 속도(전개)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와중에도 보여줄 건 다 보여주는 제법 세련된 매력을 한없이 뿜어낸다. '좀비'라는 소재 자체가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매니아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천만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배경 설정이다. 기차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이토록 다양한 상황 연출과 액션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칭찬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내리 달리는 기차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좀비의 수, 점점 더 다급 해지는 상황들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주곤 했다.

편견, 의심, 신뢰, 이기심, 희생, 사랑, 배신 등. 두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감독은 참 많은걸 담아내려고 했다는 게 느껴진다. 저 많은 요소들이 자칫하면 서로 엉키고 엉켜 조잡한 방향으로 흘렀을 텐데 연상호 감독은 꽤나 재치 있게 이 요소들을 잘 버무려냈다고 생각된다. 

대놓고 사회비판적인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약간은 덜 하지만 이 '부산행' 역시 현시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숨기기에만 급급한 정부의 모습과 점점 더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데 좀비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작품 속에서 그러한 메시지들을 녹여냈다는 게 인상적이다. 

그간 외화 좀비물에서 보여줬던 액션씬들과는 사뭇 다른 부산행만의 나름 독창적인 액션 연출도 좋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배우 마동석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단순 액션씬뿐만이 아닌 등장과 대사 하나하나에서 이토록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도 몇 없다고 생각이 된다.

영화 속 공유는 집 밖에서는 제법 인정받는 비즈니스맨 일지 모르지만 집안에서 만큼은 그렇지 못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나온다. 딸의 학예회가 언제인지 어떤 선물을 해줬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못나고 못난 아빠인데 이러한 아빠를 변화시키는 딸의 뼈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다시 생각해봐도 기차라는 공간을 주 배경으로 삼은 건 아주 좋은 수였다고 생각된다. 협소한 공간이기에 한정적이지만 반대로 이토록 다양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감독의 능력을 어필하기에 최적의 초이스가 아니었나 싶다.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와 '창'을 참 인상 깊게 봤는데 그의 첫 상업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연상호 감독은 물 만난 고기처럼 영화를 연출한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의 다음 작품이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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