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Aug 13. 2017

덩케르크

'그거면 충분해.'


 덩케르크는 그간 전쟁영화들이 가던 길과는 확연히 다른 길로 나아 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인공이라고 말할만한 인물을 딱히 설정하지 않는, (못하는 게 아닌 굳이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 일단 기존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해간다. 

 이 과정에서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전쟁이라는 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세 장소에서, 세 집단의, 세 사건을 교차로 편집해 관객으로 하여금 좀 더 그 상황(전쟁) 속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단순히 하나 혹은 둘의 인물이 아닌 그 상황과 시간들로 내용의 흐름을 잡고 가니 그 이야기, 그 상황 속으로 내가 아예 들어 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 작품은 놀라우리만큼 대사가 적다. 입으로 설명하는 게 아닌 보이는 그대로를 고스란히 느끼게끔 하려고 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의도가 느껴진다. 침묵과 절제로도 그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묘사할 수 있음을, 병사들의 표정과 참담한 배경이 모든 걸 설명해줌을 느꼈을 때는 작지 않은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한스 짐머를 빼놓고 갈 수가 없다. 튀지 않고 절제되어있는 완성도 높은 음악이 덩케르크와 만났을 때 터져 나오는 시너지는 마치 영화와 음악, 음악과 영화 사이에는 이렇게 유니크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걸 검증하는 듯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인으로서의 존재 이유이자 그들이 지켜야 할 사명 중 하나이다. 패배한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좌절과 불안함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들을 맞이하는 국민들과 군인이 나눈 대화는 짧고 명료했다. '수고했네' '살아서 돌아온 것뿐인데요?' '그거면 충분해'. 그 마지막 한마디로 106분간 쉼 없이 달려온 영화 속 인물들과 나 또한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아주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충분' 하다는 말이 가진 가치의 무게를 그 누가 함부로 잴 수 있겠는가.


 운 좋게 덩케르크가 상영하는 기간 동안 한국에서 휴가를 보낸 덕에 용산 아이맥스에서 관람을 할 수 있었고, 그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까지 시드니에 존재했던 가장 큰 아이맥스관에서 재관람했던 놀란의 '다크 나이트' 그리고 새로이 오픈한 가장 큰 아이맥스관에서 관람 한 놀란의 '덩케르크'. 굳이 극장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포맷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덩케르크'는 왜 극장이 존재해야 하는지 극장만이 가진 그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증명해준 카운터 같은 작품이다.


 이쯤 되면 놀란이 만들어 낼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완성도를 보여줄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그냥 한 사람으로서 이런 작품과의 조우는 언제나 반갑고 대환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